[권훈의 골프산책] 오그라들었던 김해림은 어떻게 3연패 이뤘을까

대회 3연패에 결정타가 된 17번홀 버디에 환호하는 김해림.(KLPGA 제공)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사실 많이 울었어요. 툭하면 울면서 한국에 있는 코치님한테 전화하는 게 일이었죠"

지난 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오픈 3연패를 위해 일본에서 귀국한 김해림(29)은 일본 생활이 어땠냐고 묻자 이런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작년 7월 초청 선수로 출전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사만사 타바사 레이디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김해림은 올해부터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사만사 타바사 레이디스 토너먼트 우승자 자격으로 나간 작년 일본여자오픈에서도 공동 5위에 오르는 등 일본 무대에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올해 김해림은 8개 대회에서 톱10에 두번 입상했지만 3차례나 컷 탈락했다. 상금랭킹 43위(552만2천 엔), 평균타수 29위(72.7타) 등 썩 나쁘지는 않지만 지난 2년 동안 국내 최고를 다투던 그에게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래서인지 김해림은 일본 투어 얘기가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졌다. 교촌 허니 레이디스 1라운드 출격을 앞두고도 "일본에서 티샷이 좋지 않아 고전했는데 오늘은 어떨지 걱정"이라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과연 대회 3연패를 노리고 대한해협을 건넌 선수가 맞나 싶을만큼 김해림은 위축되어 있었다.

고작 "대회 명칭이나 대회 코스 이름에 '촌'이 들어가면 잘 친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희망'을 피력했을 뿐이다. 김해림이 2번 우승한 교촌 허니 레이디스오픈은 엘리시안 강촌 CC에서 열렸다. 김해림은 남촌 CC와 동촌 CC에서 한번씩 우승했다.

도무지 자신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던 김해림은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달라졌다.

강풍과 까다로운 핀 위치 때문에 언더파 스코어를 낸 선수가 6명 뿐이었던 1라운드에서 이븐파 71타를 쳐 공동7위에 오른 김해림은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렸다"며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튿날 2라운드 경기를 선두에 3타차 공동7위로 마친 김해림은 "우승도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해림은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 66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최종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김해림보다 앞선 순위였던 6명과 같은 순위였던 4명 등 10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티샷 불안을 비롯해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고 엄살을 피우던 선수는 온데 간데 없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막판 역전승을 일궈냈다.

사흘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대회를 앞두고 "일본에선 많이 울었다"는 김해림의 말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회 때마다 낯선 코스에서 경기하면서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면 그렇게 속이 상할 수 없었다"는 김해림은 "한국에서는 경기가 안 풀리면 화가 났는데 거기서는 서럽고 슬펐다"고 설명했다

김해림은 일본에서 세번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컷 탈락하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호텔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돌아갈 집도 없고 딱히 가볼만한 곳을 찾아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는 곳에서 그럴 때면 절로 눈물이 쏟아졌다고 김해림은 하소연했다.

이런 외로움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은 코스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컷이라도 당하면 또 그런 외로움과 서러움을 피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샷은 오그라들었고 퍼트는 견고하게 때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땅을 밟은 29일 저녁을 집에서 보낸 김해림은 대회가 시작된 4일까지 가족, 친구들과 모처럼 수다도 떨고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즐겼다. 이 사이 김해림의 마음 속 병은 치료됐다.

김해림은 "그동안 쌓였던 게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응원단이다. 김해림은 "일본에서 경기할 때는 영화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행인1'이나 '행인2' 신세였다"면서 "한국에 오니까 팬클럽 응원단 수십명이 따라다니며 격려해주니 없던 힘까지 났다"고 말했다.

위축됐던 김해림은 팬클럽 이름 '해바라기'처럼 활짝 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김해림의 샷의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위축감이 자신감으로 변한 게 우승을 이끈 원동력 전부는 아니다.

김해림이 투어에서 최정상을 다투는 경기력의 핵심은 장타나 송곳 아이언샷, 또는 컴퓨터 퍼팅 등이 아니다.

김해림의 장기는 '코스 매니지먼트'다. 즉 빼어난 경기 운영 능력이다.

경기 운영 능력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록을 뜯어보면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보기 위기를 잘 넘긴다.김해림은 지난해 리커버리율 2위(65.14%)였다. 그린에 볼을 올리지 못해도 세번에 두번은 파를 지켰다는 뜻이다.

리커버리율이 높다면 쇼트게임이나 퍼트 실력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김해림은 더 나아가 '실수를 해도 만회가 어려운 곳으로는 볼을 보내지 않는' 능력이 발군이다. 아무리 쇼트게임과 퍼트가 뛰어나도 도저히 파를 지켜낼 수 없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김해림은 좀체 그런 곳으로 볼을 보내지 않는다. 김해림의 코치이자 멘토인 삼천리 골프단 지유진 감독은 "코스를 구석구석 파악하고 잘 활용한다"며 "실수를 해도 만회가 가능한 곳으로 하기에 더블보기 이상 나쁜 스코어가 좀체 없다"고 말했다.

김해림은 일본에서는 이런 빼어난 경기 운영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 감독은 귀띔했다. 더블보기 이상 스코어가 적지 않았고 연속 보기도 더러 나왔다. 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김해림도 "일본에서 코스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 땐 달랐다. 잘 아는 코스였고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도 가늠하기가 수월했다.

대회 사흘 전까지만 해도 마음 속으로 "컷 통과가 목표"라고 되뇌던 김해림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16년 만에 동일 대회 3연패라는 위업을 이룬 힘은 '마음의 힐링'과 '응원' 그리고 되살아난 코스 관리 능력이었던 셈이다.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