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막기로 아파트 주차장 명당 독차지한 밉상 부부

20년 아파트 관리소장이 본 주민생활 천태만상이 책으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차량 한 대만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차공간에 매일 같은 차량이 서 있네요. 혹시 관리사무소에서 지정석을 준 건가요?"

한 아파트 관리소에 수차례 들어온 민원이다. 이 아파트 단지 총세대 수는 700가구, 주차가 가능한 차량은 900대다. 맞벌이 세대가 많아 한 집에 차량 두 대를 굴리는 경우도 많다 보니 총 등록 차량은 1천 대가 넘었다. 늘 주차난으로 분쟁과 민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양쪽에 기둥이 있고 옆으로는 여유 공간이 더 있는 널찍한 곳은 누구나 탐내는 명당자리. 그런데 늘 같은 차량이 세워져 있으니 입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는 것이었다.

관리소장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찰하니, 그 자리에 주로 세워져 있는 중형차가 없을 때에는 늘 같은 소형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알고 보니 한 부부가 차 두 대를 굴리면서 남편이 중형차를 타고 나가면 부인이 소형차로 다시 채우는 식으로 자리를 독점하고 있었다. 남편이 새로 뽑은 중형 세단을 고이 간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사례는 최근 출간된 책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출판사 메디치)에 소개된 내용이다. 20여년 경력의 아파트 관리소장 김미중 씨가 아파트 여덟 군데를 거쳐 관리소장으로 일하며 겪은 경험담을 쓴 책이다.

최근 한 아파트 주차 관련 다툼이 큰 이슈가 된 가운데 이 책에는 함께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 많다.

주차장 명당자리를 독점한 이 '밉상' 부부에게 관리소장인 저자는 직접 말도 못 하고 결국 공고문을 써서 붙인다.

"누구든 큰 집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주차도 넓은 곳에 맘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크기의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 나만을 위해 넓은 주차장을 독점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됩니다. 아파트 주차장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독점 주차는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메디치 제공]

"어떤 놈이 내 차에 스티커 붙였어? 당장 와서 떼!"라는 항의는 아파트 관리소에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다. 관리소 직원들로서는 워낙 이 문제로 '멱살잡이'를 많이 당하다 보니 웬만하면 과태료 딱지를 붙이지 않으려 한다고. 하지만 다른 주민들에게 심하게 피해를 주는 주차 행태가 워낙 반복되다 보니 딱지를 안 붙일 수도 없다는 게 고충이다.

"주차하는 형태도 어찌 그리 각양각색인지 기둥 옆 통로에 삐딱하게 주차해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는 차량, 코너에 주차해 차량들이 회전하지 못하게 하는 차량, 공동현관 입구에 주차해 사람들의 보행 통로를 막는 차량, 주차장 입구나 출구에 주차하는 차량, 주차라인 두 개를 차지하는 차량, (…) 창의력 콘테스트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22쪽)

저자가 골치를 앓은 한 사례는 공동현관 입구에 상습적으로 주차하는 봉고차 문제였다. 그 때문에 출근하면서 이 차량을 지나치다 차량 먼지가 묻어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입주민도 있고, 유모차가 빠져나갈 수 없어서 울상을 짓는 일도 있었다. 관리소에서 수차례 자제를 요청하고 주차금지 표지판까지 설치했지만, 차주는 그 표지판마저 밀어버리고 주차하곤 했다.

"새벽 2시에 들어오는데 어쩌라고"라며 버티는 봉고차주는 지하 2층에 주차공간이 많다는 지적에 "내가 미쳤어? 지하 2층까지 내려가게. 그리고 우리 동에서 가까운 데는 자리가 없잖아"라며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저자는 이렇게 푸념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경비원이나 관리소 직원들은 주차 단속 스티커를 부착하라고 하면 얼굴부터 어두워진다. 아침 출근 시간부터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과 실랑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불법 주차 차량은 늘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29∼30쪽)

저자는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부디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함께 사는 타인의 사정, 다른 입장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아파트가 '돈을 주고 사는 곳'이 아닌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프롤로그 중)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