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전 몽골 정보기관 보고서 "조종사 실수로 추락" 결론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문화대혁명 기간 반(反) 마오쩌둥(毛澤東)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45년전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린뱌오(林彪·1907∼1971)의 추락사 원인이 연료부족이나 미사일 격추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2일 몽골 정보기관이 당시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사고원인을 분석한 러시아어 보고서 사본을 입수, 린뱌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조종사의 실수로 추락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중국 당국은 연료 부족으로 추락했다고 주장했고 중국이나 소련군의 미사일로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음모론도 제기돼 왔다.

추락사고 2개월 뒤인 1971년 11월20일 작성된 이 보고서는 린뱌오와 부인 예췬(葉郡), 아들 린리궈(林立果), 그리고 수행원 6명 등 총 9명을 태우고 가던 트라이던트1E가 1971년 9월13일 새벽 2시25분(현지시간) 몽골 고비사막 근처에 추락했다고 썼다.

당시 이 비행기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 등 '적대적인 사격'이 없었으며 비행기의 3개 엔진도 추락 당시 별달리 파손되지 않았다.

또 비행기는 시속 500∼600㎞의 속도로 지상에 부딪힌 뒤 상당히 오랜 시간 폭발과 화재가 이어졌는데 이는 기체내에 충분한 연료를 갖고 있었다는 의미로 연료부족 때문이라는 중국의 주장에도 반한다.

이 보고서는 홍콩 신세기출판사의 바오푸 대표가 올해초 미국 하버드대학의 중국연구기관인 페어뱅크센터 문서고에서 발견했다. 바오푸는 "아직 어떤 학자도 이처럼 중대한 내용의 보고서를 열람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린뱌오는 중국 공산당의 항일전쟁과 대장정에 참여했던 혁명가로 마오쩌둥의 대약진정책과 문화대혁명을 지지하고 개인숭배를 주도하면서 중국 공산당내 2인자이자 후계자로 지목됐던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린뱌오가 총사령으로 임명됐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펑더화이(彭德懷)가 사령관으로 참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린뱌오는 하지만 1971년 마오쩌둥의 견제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실각한 뒤 공군에 복무중인 아들 린위궈와 함께 마오쩌둥 암살 계획인 '571 공정(工程)'을 세웠다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작전명 '571'은 무장 폭동을 뜻하는 무기의(武起義)를 의미한다.

결국 린뱌오는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탈출, 소련으로 망명하려다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마오쩌둥 신화가 흔들리고 문화대혁명이 말기에 접어들 즈음 중국 당국에 의해 권력 핵심에 있다가 '변절자'로 낙인찍힌 그의 죽음은 중국 현대사의 미스터리중 하나였다.

광저우 사학자 위뉘신 교수는 "중국은 린뱌오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꺼렸다"며 "린뱌오를 기리는 기념식이나 행사가 열려 린뱌오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린뱌오는 당시 마오쩌둥이 민주주의를 개인적 정치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던 것에 항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쩌둥은 린뱌오 사건 이후 중국군 내부의 린뱌오 인맥을 솎아내기 위해 문화대혁명 초기 '제2호 주자파(走資派)'로 몰아 숙청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을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이후 문화대혁명 종결을 선언하고 개혁·개방에 이르는 실마리를 린뱌오가 제공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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