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 성지에 영면…금기어 '하타미'도 등장 이란 내무부 "250만명 운집"…차분한 분위기 속 진보진영 세결집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10일(현지시간) 테헤란대학교에서 엄수된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의 장례식은 오전 10시에 시작됐지만 3시간 전부터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이 몰렸다.

어림잡아도 수십만명은 거뜬히 넘어 보였다.

테헤란대학교 교정뿐 아니라 그 앞을 지나는 왕복 6차선 엥겔랍(혁명) 거리는 마치 검은 물결이 치는 듯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란 현지 언론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보도했고, 이란 내무부는 최소 250만 명이 운집했다고 집계했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관은 "이란 이슬람혁명 지도자 이맘 루홀라 호메이니의 1989년 장례식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의 대중적 지지를 가늠하기에 충분한 현장이었다. 이란 정부는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정했다.

라프산자니가 이슬람혁명의 주역인 만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비롯해 하산 로하니 대통령, 알리 라리자니 의회 의장, 군부 장성 등 이란 고위 인사가 모두 테헤란대학교로 집결했다.

라프산자니의 상여가 군중을 통과하자 그를 추모하는 열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 보려는 지지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철제 도로 분리대가 부서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군중 사이에서 '하타미'라는 이름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라프산자니의 뜻은 하타미"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

모하마드 하타미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이란 대통령에 재임한 정치인으로 개혁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이란 사법 당국은 하타미가 2009년 강경 보수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신문, 방송이 그의 얼굴이나 발언은 물론 이름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조치는 2013년 중도·개혁 진영의 로하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풀렸으나 2015년 2월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의 요구로 되살아났을 만큼 보수 진영이 껄끄럽게 여기는 대중성 높은 정치인이다.

또 다른 개혁 진영인사인 미르-호세인 무사비의 가택연금 해제도 정부에 요구하는 구호도 들렸다.

무사비는 2009년 대선에서 하타미의 지지를 받고 출마했다가 강경 보수파 마무디 아마디네자드 당시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는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 개표 시비가 일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다른 각도로 보면 장례식은 5월 대선을 앞두고 이란 진보진영의 '세 결집' 현장이기도 했다.

진보진영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선 "국영 방송이 군중 수가 많아 보이지 않도록 높은 곳에서 촬영한 화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하타미를 지지하는 구호가 들리지 않게 묵음 처리했다"는 등의 소문이 유포됐다.

실제 이란 국영방송은 하타미를 지지하는 구호가 나오자 중계를 잠시 멈춘 뒤 추모 음악을 배경으로 내보냈다.

장례식인지라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팽팽한 긴장감도 함께 감돌았다.

이런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정치적 긴장을 희석하려는 듯, 이란 정부는 거리 곳곳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라프산자니가 다정하게 함께 있는 사진과 현수막을 걸었다.

이란의 두 거물급 정치인은 이슬람혁명의 주역으로 '오랜 친구'였지만 라프산자니가 2005년 진보진영을 두둔하면서 틈이 벌어졌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8일 라프산자니가 사망하자 "이견이 있었지만 하셰미는 대체할 수 없는 혁명의 동지였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의 아들 장남 모흐센은 "선친은 이슬람혁명을 위해 삶을 바치셨다"며 "그는 이란의 변함없는 단합을 원하셨다"고 강조했다.

라프산자니는 호메이니의 묘지가 있는 테헤란 남부 외곽의 이맘 호메이니 성지에 묻혔다.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