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 회장 "미래의 디스플레이는 눈으로 실현된다" "각막이상 유전자 진단으로 출발했지만, 안과 유전 질환 전반 나아가 테크와의 결합 꿈꿔"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가상현실이 되고, 증강현실이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눈 자체가 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이지요."

실리콘밸리 먼로파크에서 만난 안과 질환 유전자 검사 스타트업인 '아벨리노 랩' 대표 이 진 회장(51)의 포부는 컸다.

지난 2008년 세계 최초로 각막이상증과 연관된 유전자 돌연변이를 진단하는 '아벨리노 테스트'를 개발한 그는 현재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4개 글로벌 법인에 9개의 연구실을 보유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가장 성공한 한인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로 주저 없이 아벨리노를 꼽을 정도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라식ㆍ라섹 수술이 본격화되면서 급증한 질병이다. 각막 중심부에 흰 반점이 생기며 시력이 저하되는 이 유전 질환은 라식ㆍ라섹 수술과 같은 레이저 시술을 받게 되면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심할 경우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식 라섹 수술은 눈을 밝게 하는 현대 의학의 '총아'지만,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약 800여 명에 한 명가량이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유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어서 최근에는 라식ㆍ라섹 수술 전에 이 검사를 하는 것이 꽤 보편화 된 상황이다.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 상품매니저를 담당했던 그는 10여 년 전 처음 이 질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브란스 병원 김응권 교수,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 등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2년여 만에 아벨리노 테스트 개발을 완료한 그는 한국 시장에 이어, 2010년 일본의 최대 라식 센터인 시나가와와 계약을 체결했고, 2012년에는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 FDA(식품의약국)의 CLIA(Clinical Laboratory Improvement Amendments)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영국 얼스터 대학과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협약과 지식재산권 계약을 맺었다. 이 대학의 타라 무어 교수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유전자 치료의 권위자다.

이 회장은 무어 교수와의 만남을 '운명적'이라고 표현했다. 무어 교수가 가진 각막이상 유전자 치료법인 '크리스퍼 캐스나인'(유전자 가위 기술)은 아벨리노의 진단 기술과 결합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인데, 서로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특허 출원을 위해 살펴보니 서부시대 개척자들이 '이 만큼이 내 땅'이라고 선언했다는 말이 실감나더라"며 "눈의 앞부분 유전 질환과 관련된 특허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무주공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 최고의 특허 법률법인인 모건 루이스와 계약을 맺고, 1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해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2015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의 '테크 파이오니어'로 선정돼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도 참가했다. 과거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스타트업일 때 선정됐던 테크 파이오니어에 한국 바이오 기업으로는 처음 선정된 것이다.

현재 55만 건이 넘는 테스트를 해 600명 가까운 아벨리노 각막이상 유전자 보유자를 찾아냈다고 한다. "600명을 실명 위기에서 구한 것"이라고 아벨리노 측은 말했다.

그의 사업이 언제나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한국의 안과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마케팅할 때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막막했다고 한다. 2013년 미국 안과 학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엄청나게 준비해 '아벨리노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참석자가 단 두 명에 불과했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시장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지금은 존 마샬 영국 세인트 토머스 병원 안과 과장, 앤서니 알데이브 UCLA 의대 교수, 기노시타 시게루 오사카대 교수, 테리 김 듀크대 교수 등 안과 학회의 최고 권위자들을 메디컬 자문 그룹으로 두고 있다.

2015년 매출이 100억 원을 넘어섰을 때는 이제 한고비가 지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라식 수술 환자의 40%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보고서 한 줄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작년 일본의 라식 수술이 10분의 1로 격감해 회사 매출은 50억 원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40%의 부작용에는 일시적 안구건조증이 포함된 것이었고 오류가 있다는 정정 보고서까지 나왔는데도 그때는 언론이 단 한 줄도 안 쓰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라식ㆍ라섹 수술은 바람을 많이 타는 분야에요. 의료용으로뿐 아니라 미용의 목적으로도 하니까요. 어떤 때는 유행처럼 번지다가 부작용 얘기 한 방이면 또 훅 내려가 버립니다."

매출이 반 토막이 됐으면 그 회사 대표는 초주검이 돼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올해는 우리가 정말 좋은 숫자를 기록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득의만만한 표정이었다.

얼스터대와 함께 치료제를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중국 시장을 더욱 활성화할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또 좀 더 빠르고 저렴하게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들도 구체화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앞으로 중국의 임산부나 신생아들에게 아벨리노 테스트를 할 길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형 의료 법인으로부터 출생 전이나 신생아 단계에서 이 검사를 해서 원인을 잡고, 태어나는 아이나 신생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매년 라식ㆍ라섹 시장이 20∼30%씩 증가하는 세계 최고의 시장입니다. 여기에 소아과와 산부인과 등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시장 전망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그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을 일으키는 인간 유전자 염색체 5번의 TGFBI가 단지 각막뿐이 아니라 여러 유전 질환과 관련됐을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유전성 안과 질환뿐 아니라 암 등 모든 질환에 대한 연구로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13년 서울에 있던 본사를 아예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당시 바이오 산업은 샌디에이고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구글의 자율주행차를 처음 본 순간 그는 "여기에 둥지를 틀어야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각막이상 유전자 진단을 하는 기업이 IT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굳이 실리콘 밸리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과 관련된 바이오 기업이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가 뜬금없이 기자에게 물었다.

"실리콘밸리의 자이언트(구글, 애플 등)들은 앞으로 디스플레이를 눈에 실현하고 싶어 합니다. 얼마 전 안과 관련 세미나에 구글 관계자가 참석했어요. 그 사람 얘기는 '구글 콘택트렌즈'가 최종 종착지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최근 구글이 눈을 깜박이는 힘으로 에너지를 얻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눈과 관련된 회사들은 IT와 만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참 신기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CES에서 LG 디스플레이는 투명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를 콘택트렌즈화하고 미세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 눈이 디스플레이가 되는 날은 그리 먼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착용했을 때의 부작용 방지를 위한 기술 또한 필수적일 것이다.

이 회장은 구체적 기업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재 이곳(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과 협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공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2019년에는 나스닥에 상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상되는 기업가치는 얼마쯤 될까. 그는 최근 상장된 스파크라는 바이오 스타트업(눈의 뒷부분 유전데이터 전문)을 예로 들면서,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그 회사보다는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5년 나스닥에 상장된 이 기업의 시가총액은 19억 달러(2조2천400억 원)다.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