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른바 스트롱맨(strongman) 시대의 도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반도는 스트롱맨들로 에워싸였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이다. 이들 스트롱맨이 벌일 강(强)대 강(强) 대치의 주요 무대는 한반도다. 이들은 강한 기세를 한반도에 뿜어낼 것이다. 그만큼 한반도의 가변성, 나아가 위기 도래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대결 무대는 주로 외교·안보와 경제 분야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우리는 새 국가리더십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야 대선 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벚꽃 대선'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선 출마선언, 공약 발표가 줄을 잇는다. 후보들 간 신경전도 벌써 가열 조짐이다. 하지만 이번 선택이 마냥 달가운 것은 아닌 듯하다. 선뜻 내키는 후보가 없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찍지 않을 후보부터 배제해 가는 역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변국 스트롱맨들과 대등하게 맞설 만큼 자질을 갖춘 후보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주변 강국들의 노선은 확실하다.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 푸틴은 강한 러시아, 시진핑은 대국주의로 가는 중국의 꿈(中國夢), 아베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보통국가'를 내걸고 있다. 쉼 없이 핵보유국 승인을 모색해온 북한의 김정은도 '스몰 스트롱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생각은 제각각이지만 공통분모가 있다. 무자비한 공격성으로 무장한 자국 우선주의다. 궁극적으로는 자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 질서 형성을 겨냥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시대적으로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가 할거했던 2차 세계대전 때가 1차 스트롱맨 시대였다면, 이번을 2차 스트롱맨 시대로 분류하기도 한다. 과거엔 유럽이 스트롱맨의 주 무대였으나 현재는 전 세계로 지역적 확산을 한 게 두드러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스트롱맨 현상을 놓고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시스템에 기대지 않아 세계정세를 불안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국제관계든, 경제든 기존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스트롱맨들의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 스트롱맨이 주도하는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 석학들도 "우리가 아는 것은 모른다는 것뿐"이라고 할 정도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에 대한 논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말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한 뒤 "왜 하나의 중국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기존 질서의 명백한 파기다. 지난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40년 가까이 불문율이었던 '하나의 중국'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부정된 셈이다. 이는 예고탄에 불과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이 다보스 포럼에서 보호무역주의 반대를 주창한 것도 사드 보복을 당하는 우리 입장에선 어불성설이고 논리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전례 없는 흐름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뒤죽박죽인 세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스페인 '엘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트롱맨이 득세하는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였다. 현재를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고, 위기의 시대에 늘 있는 구세주를 찾는 경향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기는 두려움과 우려를 일으킨다"며 "유럽 포퓰리즘의 전형은 1933년 독일로, 히틀러는 국민에 의해 선출돼 국민을 파괴했다"고 경고했다.

외교부는 신년 업무보고에서 "냉전 이후 가장 엄중한 외교·안보 환경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부처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리 앞의 높은 파도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성격일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어쩌면 순간순간 위기가 닥쳐오는 전인미답의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만난 한 전문가는 미·중 간 대립 격화를 내다보면서 "양국이 우리에게 줄서기를 강요하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야 한다. 결국, 한 쪽을 포기하는 외길 선택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외교·안보와 경제는 우리 생존의 양대 축이다. 하지만 언제 그 축이 무너질지 모르는 불가측성이 높아지는 게 우리 앞에 놓인 위기의 실체다. 아무리 대선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위기 둔감증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최순실 사태'로 긴박한 시기에 장기간의 국정 공백이 빚어진 것은 치명적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되돌릴 수도 없다. 결국은 차기 정부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주역이 될 대선후보들이 너무 한가해 보여 걱정이다. 후보들의 언행이나 공약 그 어디에서도 위기감을 찾아볼 수 없다. 스트롱맨들에 필적할 만큼 강한 카리스마도, 유연한 사고도, 전략적 완성도도 없어 보인다는 게 솔직한 관전평이다. 이제라도 진지하게 위기 해법을 내놓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다른 대선 때와는 다르다. 누가 위기 사이로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중요한 선택의 잣대다. <논설위원>

h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