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새누리당 간판이 내려졌다. 5년 만이다. 새누리당은 8일 의원 연찬회를 열어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기로 최종 결정했다. 당명 개정에는 최순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새누리당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 탈피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구(舊) 여권을 계승한다기보다는 단절의 의미가 더 강하다. '최순실 파문'에서 해방되고 싶은 기대치가 반영돼 있는 셈이다.

우리 정치사(史)에서 당명 개정 등은 흔한 일이고, 그 사유도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학계의 정당 분석에 따르면 1948년 제헌 국회 이후 국회의원 후보를 낸 정당은 210개다. 하지만 평균 수명은 2년 6개월에 그친다. 수없이 많았던 정당의 이합집산을 보여주는 수치다. 여기에는 새 정당 창당과 함께 신규 멤버를 끌어들인 확대 창당, 간판만 바꿔 다는 당명 개정, 흔히 정치 M&A(인수·합병)로 불리는 합당이나 분당 등이 두루 포함된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 등 정치 변동기를 전후해 당의 부침은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떴다방 정당'의 등장과 소멸이다. 이번 대선만 해도 새누리당 탈당파들이 주축이 된 바른정당이 창당됐다. '빅텐트론', '제3 지대론' 등의 대선 시나리오가 다소 시들해지긴 했지만, 기회가 되고 필요하면 정당 간 빅딜은 언제든지 성사될 수 있는 카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당은 왜 이렇게 단명하는 것일까. 미국이나 영국처럼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들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미국의 민주·공화당, 영국의 보수·노동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도 '100년 정당'을 호언장담한 정당이 더러 있긴 했다. 열린우리당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2003년 11월 창당 당시 100년 이상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불과 4년 3개월 뒤 대선 패배와 함께 당명을 통합민주당으로 바꿨다. '100년 정당'을 목표로 창당 작업을 한다고 했다가 한 달여 만에 중도 하차하는 촌극이 빚어진 경우도 있다.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수명을 넘긴 정당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가장 장수한 정당은 민주공화당으로, 1963년 5월 창당돼 1980년 10월까지 17년 5개월 간 존속했다. 한나라당(14년 3개월), 신민당(13년 8개월) 등이 그 다음으로 장수정당 계보를 잇는다. 정당 수명이 2000년 이후 더 짧아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 야권만 해도 2002년 집권을 했으나, 이후 각종 선거에서 연이어 패하면서 16년간 10개가 넘는 정당이 출몰했다.

이처럼 짧은 정당 생존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속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시스템에 기반한 정책 중심 정당이 돼야 정치 외풍의 영향을 덜 받고 생존력도 강해지는데, 그런 구조를 가진 정당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다. 대신 우리 정당은 특정 인물에 의해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정당 존립에 가변성이 높아지면서 생존 주기도 단축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내재해 있었다. 가령 정치가 만개했다고들 하는 '3김(金) 시대'를 보면 유독 정당의 설립, 해산, 분당, 합당이 두드러진다. 김종필 전 총리의 경우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3당 합당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DJP 연합'을 했다. 자신이 대주주인 정당을 별 구속 없이 잇속 가는 대로 여기저기에 뗐다 붙였다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특정인의 대선·총선 전략이나 입지 모색을 위한 도구로 정당이라는 조직이 동원된 셈이다. 정당이 주체고 거기에 몸담은 정치인이 객체인 조합이 아니라 정당이 객체고 정치인이 주체가 되는 후진적 구조였다.

헌재 결정에 따라 '벚꽃 대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정당들도 덩달아 분주해지고 있다. 저마다 대선 능선을 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뒤 대선이 끝나고 나면 정당 간 희비는 확연히 엇갈릴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을 낸 정당은 한걸음 더 내달아 국회 과반 욕심을 낼 것이고, 나머지 정당은 어떻게든 생존 몸부림을 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한차례 큰 회오리가 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당사에 새로운 정당, 사라진 정당 리스트가 추가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과도기는 잘만 활용하면 정당 업그레이드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보수정당의 경우 당내에 절대 강자가 없다. 특정인 중심 정당체제를 탈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패거리 정치, 끼리끼리 정치 대신 열린 참여와 토론을 통해 다중의 지혜가 모이도록 해야 한다. 이른바 탈(脫) 사당화의 호기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