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 후 관광객 증가로 지역 일자리 창출·소득 증대 기대

"등재 후 추가 규제 없어…등재 반대 주민과 상생 비전 공유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고대 백제 비밀을 간직한 풍납토성 등 한성백제 유적이 2020년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유네스코 문을 두드리기까지 치열한 국내 '예선'부터 통과해야 하는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생을 통해 지역 주민의 동의를 끌어낸다면, 세계유산 등재로 공주·부여·익산은 물론 일본까지 연계한 '백제문화벨트'를 조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21일 "백제문화벨트를 조성하면 관광객이 더욱 급증할 전망"이라며 "한성 시기를 포함한 백제 700년의 온전한 역사가 세계인에게 베일을 벗는 셈"이라고 말했다.

◇ 한성백제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서울시에 따르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백제역사유적은 풍납토성을 비롯해 몽촌토성, 석촌동고분군, 방이동고분군 등 4곳이다.

이미 2015년 7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범위를 서울까지 확장하는 이른바 '확장등재'(Extension)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학술 기반 구축→잠정목록 등재 준비→잠정목록 등재→우선등재대상 선정→등재신청서 제출→등재 여부 결정' 순서로 이뤄진다.

잠정목록이란 세계유산목록에 포함될 가치가 있는 유산으로서, 앞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예비 목록을 가리킨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강진 도요지, 중부내륙산성군, 외암마을, 낙안읍성 등 11개 문화유산과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서남해안 갯벌 등 4개의 자연유산 등 총 15개가 있다. 이 가운데 서울 한양도성은 지난해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가, 올해 3월 등재신청을 철회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이들 잠정목록 가운데 문화재청이 매년 1곳 정도를 우선등재대상 유산으로 선정해 세계유산 등재신청을 준비한다"며 "이 때문에 풍납토성이 잠정목록에 등재돼도 빨라야 2020년 이후에나 세계유산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풍납토성이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려도 길게는 20년 넘도록 잠정목록에 등재 상태인 다른 국내 유산들과 15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 풍납토성 주민 반대 극복이 관건

한성백제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일부 풍납토성 인근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시는 올해 2∼3월 구청장 동의를 얻어 문화재청에 잠정목록 등재신청을 할 계획이었으나 송파구가 난색을 보였다.

송파구는 "그간 7천억원이라는 막대한 보상재원이 투입됐지만 재산권 침해로 인한 지역 주민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 주민 요구사항인 이주대책과 정주성 향상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풍납토성 내 핵심 지역인 경당지구 일부 주민이 보상가를 올리거나, 송파 지역에 거주할 수 있게 해달라며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상황인데 보상 외에 다른 사항은 관련 법규상 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서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관련 주민을 지속적으로 만나 이해와 설득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주민들은 풍납토성 때문에 지역 재개발·재건축이 가로막혔다며 유적 발굴과 세계유산 등재 추진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1년 4월 지하 2m, 지상 15m 이내의 범위에서 기존 건물 증·개축만 허용한다고 의결했다.

모든 공사에 앞서 문화재 전문공인기관 조사 후 건축을 하되, 풍납토성 학술조사는 문화재청 산하의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일원화해 정부가 직접 조사를 담당토록 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 같은 조치를 두고 "풍납토성 내부에서는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납동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보상비로는 인근 같은 수준의 집으로 갈 수 없다. 송파구민이 송파구로 이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국가에서 보물을 찾았는데, 정작 주민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풍납토성 일대 사정을 잘 아는 한 송파구민은 "일반 시민은 한성 백제를 잘 모른다. 풍납토성과 관련 역사를 알려주면 다들 좋은 느낌으로 관심을 갖는다. 두말할 필요 없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유산 등재에 먼저 성공한 다른 지역의 사례는 주민의 동의를 끌어낼 해법이 될 수 있어 주목된다.

건국대 지리학과 박선화씨의 석사학위 논문 '남한산성 산성리 마을의 주민 특성과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주민의식'에 따르면 2011년 당시 남한산성 산성리 주민 66명 가운데 21명은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했고, 38명은 반대했다.

그동안 각종 규제로 사유재산권 활용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생활이 더욱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일부 주민은 실제로 이 같은 취지에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반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유네스코 측은 문화재를 보호하려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주민과 상생 협력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코멘트와 함께 등재를 결정했다.

남한산성은 이 같은 등재 과정에서 주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한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이후의 발전 청사진을 공유했다.

'산성리 마을 만들기'라는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등재 이후 사회적 기업이나 문화재를 활용한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남한산성의 가치를 알리고자 역사 아카데미 교육도 열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원준호 경기문화재단 기획조정팀장은 "서로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관광이나 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통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발전 방향을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유네스코 新 규제는 없다…관광객 늘어 수입 증대 기대

일부 우려처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다고 해서 지금보다 규제가 강화되거나, 재산권 행사가 더 어려워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 견해다.

경기문화재단 원준호 기획조정팀장은 "규제는 문화재보호법이라는 '국내법'에 의해 이뤄진다"며 "이미 필요한 규제는 이뤄지고 있다는 뜻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다고 해서 더 '특별한 규제'가 생겨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서로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납토성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서울시 역시 이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유산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복원 작업이나 신축 작업을 할 때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따라 세계유산위원회에 통지하게 돼 있다.

하지만 실무로 내려오면 결국 해당 국가의 문화재 보호 법률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추가 규제는 없다는 설명이다.

시는 오히려 풍납토성이 세계유산이 되면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의 고용 기회와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먼저 세계유산 반열에 오른 공주·부여·익산은 등재 전 2014년 기준 평균 120만명의 관광객을 맞았는데, 2015년 7월 등재 이후 매년 평균 190만명 수준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변곡점으로 삼아 관광객이 70만명 가까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지자체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내세워 해외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충청남도는 공주와 부여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을 겨냥해 '백제야!'(百濟夜)라는 이름으로 역사 교과서 투어 상품도 개발하기로 했다.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백제 관련 내용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서울 백제역사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풍납토성 주민이 사는 주거 공간 아래에는 백제 당시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산과 사람이 공존하는 모습"이라며 "풍납토성 주민이 백제 당시의 도성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 관계자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서울은 물론, 공주·부여·익산, 더 나아가 일본 오사카 등 백제 관련 핵심 도시를 연결해 백제문화벨트를 조성한다면 관광객은 더욱 급증할 전망"이라며 "700년의 백제 역사 전체를 세계인에게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ts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