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자주권 침해·미친 행동"…메르코수르, 페루 등 "대화가 해법"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중남미 국가들이 1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투입 검토 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당사자인 베네수엘라는 물론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미국의 개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중남미 각국이 한목소리로 우려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베네수엘라를 위한 많은 옵션이 있고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군사옵션도 있다"며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AP·AFP 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1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개입 검토 발언은 과거 100년 동안 베네수엘라에 반대해 취해진 가장 지독한 호전적 행위"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교부 장관은 이날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명의의 성명을 낭독했다. 회견에는 베네수엘라 주재 미 대사관 책임자인 리 맥클레니 대사 직무대행도 참석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2010년부터 대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다.

아레아사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제국주의의 두목"이라며 "그의 발언은 베네수엘라의 자주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 국민은 정치적 입장차를 제쳐놓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거부하는데 마음을 합쳐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워싱턴은 중남미와 카리브 해 국가들을 둘로 나누고 역내 불안정을 모색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한 협박은 중남미를 갈등으로 몰아넣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레아사 장관은 그간 제헌의회 출범 강행 등 반민주적인 조치를 놓고 베네수엘라 정부를 비판해 왔다.

이 같은 기류에 비춰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베네수엘라의 내부 분열을 봉합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델시 로드리게스 제헌의회 의장은 트위터에서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신성한 자주권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겁하고 사악한 협박을 거부한다"며 "제헌의원 545명은 마두로 대통령을 보좌해 국가 수호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적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부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미친 행동"이라며 "미국이 군사 도발을 감행한다면 사랑하는 베네수엘라의 자주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군이 앞장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약화에 반대하고 실질적 대응 조치에 나서기도 했던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조차 우려를 나타냈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외교부를 통해 밝힌 성명에서 "대화와 외교적 노력만이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증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메르코수르는 지난 5일 순번 의장국인 브라질 상파울루 시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민주주의 질서 붕괴를 이유로 베네수엘라의 회원 자격을 무기한 정지한 바 있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이다.

전날 자국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를 추방하기로 한 페루를 비롯해 마두로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한 콜롬비아 등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중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세계 각국의 정치인과 사회단체, 진보 정부들이 베네수엘라의 자주권을 잇달아 지지하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협박에 반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옵션 언급이 지역을 혼돈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과거 미국의 남미 내정간섭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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