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보존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하숙집 앞에는 '박종철 거리'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좁은 창문 사이로 가는 빛줄기가 들어오고 '덜컹덜컹' 열차 소리가 이따금 들리는 곳.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서울 용산구의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이다.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가 들어선 이 건물에는 박 열사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념전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13일 기자가 찾은 옛 대공분실 5층은 난방이 가동되는 실내임에도 적막함이 흐르면서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삭막했다.

건물 뒤편의 작은 출입문을 통과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나는 철계단을 올라 도착한 5층에는 15개의 조사실이 복도를 두고 '지그재그'로 배치돼 있었다.

15개의 조사실 중 박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만이 1987년의 모습을 간직한 채 보존되고 있었다. 나머지 14개 조사실은 리모델링된 상태로 비어있었다.

509호에는 침대와 책상이 좌우측에 놓여있고, 정면에는 물고문에 사용됐던 욕조와 변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사실 안에 놓인 박 열사의 사진과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동기들이 준비한 조기, 조화는 암울했던 1987년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문 바로 위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고문 장면을 상황실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4층의 박종철 기념관은 박 열사가 생전 썼던 안경 등 유품과 1987년 당시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는 신문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실 앞 방명록에는 '1987을 보고 왔다'는 시민들의 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공분실에 대한 설명을 담은 팸플릿을 만들어 기념관에 비치하고 있던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현재 경찰이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박종철'이 아닌 '경찰의 인권 수호'가 더 중점적으로 홍보되고 있다"며 "경찰이 시민사회에 운영을 맡겨 진정으로 박종철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열사를 기억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그가 대학 재학 당시 살았던 하숙집이다. 하숙집은 1987년 1월 14일 박 열사가 경찰에게 끌려간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대 정문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박 열사의 신림동 하숙집은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다. 옛 하숙집은 1996년께 철거됐다고 관악구청은 전했다.

하숙집 앞길에는 지난해 12월 박 열사의 얼굴 모습과 약력이 새겨진 동판이 설치됐다. 동판에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대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관악구청은 하숙집 앞 거리를 '박종철 거리'로 선포하고, 4월부터는 해설사들이 박 열사의 죽음과 민주화운동에 대해 방문객들에게 설명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 열사의 모교인 서울대에도 박 열사를 기억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인문대와 중앙도서관 사이에는 추모비와 흉상이 1997년 설치됐다. 추모비는 박 열사가 당했던 물고문을 형상화하면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도 함께 조각돼 있다.

박 열사와 동기인 신효필 언어학과 교수는 "서울대에서 종철이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는 추모비와 흉상이 유일할 것"이라며 "인문대 건물도 리모델링하고 과사무실도 다른 건물로 옮겨 1987년 당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실에는 인권변호사인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박 열사의 사진이 나란히 벽에 걸려있었다.

박 열사의 언어학과 후배와 동문은 1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영화관을 대관해 1987을 함께 관람할 예정이다.

p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