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정권 교체기마다 새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 정책으로 '과학기술 혁신'을 내세운다. 그때마다 과학기술계도 '이번에는 제대로 된 혁신 정책이 나올까?' 기대치를 한껏 부풀린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학기술 혁신 정책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기대는 이전 정부 때보다 오히려 더 커졌다.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은 염한웅 포스텍 교수와 신설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된 임대식 카이스트 교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을 맡은 원광연 카이스트 명예교수 등이 모두 실력을 인정받는 정통 과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는 신뢰할만한 과학자들을 과학행정 최고위직에 앉힌 만큼 정부가 답답한 과학기술 현실을 타개할 혁신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 결과가 지난달 26일 대통령 주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1차 전원회의에서 공개됐다. '국가기술혁신체계(NIS) 고도화를 위한 국가 R&D 혁신방안'이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과학기술계에서는 국가 R&D 혁신방안에 대해 근본적 변화를 끌어내기에 부족한, 기대에 크게 못 치는 수준이라는 반응이 많다.

수십 년간 지속해온 국가 R&D 정책의 큰 틀은 놔두고 부분 부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 주력산업 성장과 국가경쟁력 향상에 원동력이 돼 왔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핵심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높은 R&D 투자비중에 비해 질적 성과가 미흡한 국가 R&D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우수학술지 논문수, 인용건수, 노벨상 등은 부족하다"며 R&D 대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과학을 경제발전 도구로 삼는 국가 R&D 구조로는 미래에 대비하는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 내에서 누구도 국가 R&D 구조 혁신에 꼭 필요한 한가지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 R&D 예산을 어디에 써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2015년 우리나라의 R&D 투자 규모는 약 66조원, GDP 대비 4.23%로 이스라엘(4.25%)에 이어 세계 2위였다. GDP 대비 R&D 투자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하는 수치다.

하지만 정부 R&D 예산구조를 보면 정부 정책에서는 R&D가 여전히 경제발전 도구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2016년 정부 R&D 예산은 19조1천억원이었고, 이 중 기초연구 예산은 5조2천억원(39.0%), 응용연구 2조7천억원(20.4%), 개발연구 5조4천억원(40.6%)이었다.

기초연구 대 응용·개발의 비율이 4대6 수준으로 미국 등 선진국과 정반대 구조이고, 이는 정부 R&D 예산으로 기업이 할 연구를 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 기초연구 예산 5조2천억원 중에서도 순수기초 연구에 투입된 것은 1조6천억원(30.8%) 뿐이고 응용·개발에 가까운 부처별 미션형 사업과 국공립연구소·출연연구기관 지원 등 목적기초연구 예산이 3조4천억원(65.4%)으로 순수기초연구의 배 이상이다.

정부 R&D 예산의 60%를 응용·개발에 투입하는 전략은 선진국의 첨단 기술을 빠르게 배워 산업현장에 적용,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는 탁월한 정책이었음이 증명됐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그때는 옳았지만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지금은 틀리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과학기술계는 이 오래된 틀을 과감히 깨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계속 뒤처지고 미래도 준비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의 틀을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 R&D 예산 투입비율을 기초연구 60%, 응용·개발 40%로 과감히 바꾸는 것이다. 이 방침이 정해지면 수조~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부처별 R&D 사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연구활동 등에도 변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큰 변화는 정부 관료조직 스스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수십년간 매년 20조원 가까운 정부 R&D 예산을 받아온 부처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정부 R&D 투자 방향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정책을 우리가 추진해도 힘 있는 부처들 반대로 실현이 어렵다"는 과기정통부 한 고위 관리의 말은 국가 R&D 혁신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의 결심과 정부 차원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소한 장관급 이상이 자리를 걸고, 속된 말로 '총대를 메고' 대통령을 설득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과학정책 전문가가 아닐 뿐아니라 '5G 상용화와 과학대중화'로 기억되고 싶다는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이를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과학계에서는 나온다.

오히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이나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같은 정통 과학자들이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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