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경숙 논설위원실장 = 태국은 4~5년 전 현대자동차의 투자를 바랐다. 현대차는 응할 수 없었다. 태국 시장을 일본이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유율이 사실상 100%였다. 현대차는 인도에 투자했기 때문에 판을 더 펼칠 여력도 없었다.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 중 외국자본 지배력 면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곳은 베트남 빼고 없다. 일본은 1950년대 동남아에 진출해 시장을 다졌다.

베트남은 어떻게 예외가 됐을까. 늦은 개방이 한몫했다. 베트남 개방 원년은 1986년. 한국은 5차 경제개발(1982~1986)을 끝냈고 해외로 눈 돌린 때다. 베트남 시장만큼은 한국이 개척에 뒤처지지 않았던 거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2016년 기준 515억 달러다. 일본은 420억 달러다. 베트남은 한국의 3위 수출 대상국이다.

인구 5천300만의 미얀마는 2011년 개방했다. 서방, 일본과 함께 한국도 진출했다. 투자 물량으로 일본을 앞설 수 없지만, 선점당한 불이익이 없으므로 한국 기업은 해볼 만하다고 느낀다. 미얀마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 산업화 후에 개방돼 한국이 덕을 봤던 사례로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중국, 인도다. 중국 개혁 개방은 1978년. 더 일찍 개방됐다면 한국은 선진국에 시장을 선점당했을지 모른다. 중국 시장은 한국 경제에 성장 엔진이었다. 2003년부터 중국은 한국산의 최대 시장이다.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는 사회주의 경제 특성, 오랜 외세 지배에 따른 반 외자 정서 때문에 1991년에야 개방했다. 인도의 저력을 꿰뚫어본 삼성, 현대차, LG는 선진국 기업보다 더 빨리, 적극적으로 진출해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태국 진출을 사양했던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인도에서 27만대를 팔았다. 3위와 15만대 차이 나는 압도적 2위다. 인도는 한국의 7위 수출 대상국이다.

아시아 마지막 미개척지가 북한이다. 인구 2천500만 명. 아주 큰 시장은 아니지만, 억눌린 소비 욕구는 강한 수요를 점치게 한다. 풍부한 지하자원, 우수한 노동력 때문에 성장 속도가 빠를 것 같다. 연해주, 몽골로 눈 돌리면 배후 시장은 3억 명이다. 한국이 북한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까. 중국은 자동차, 통신, 광업에 벌써 진출했다. 북한 무역의 중국 의존도는 90% 이상이다. 일본은 빗장이 풀리면 식민지배상금을 앞세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지 모른다. 일본이 북핵에 반발하며 제재에 앞장서는 것은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로 가려는 명분 쌓기지 시장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비핵화 선언,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 개방 드라마가 시작됐다. 핵 포기, 한국·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전제하는 북한의 전면 개방은 21세기 가장 극적인 세계사가 될지 모른다. 지구 위 마지막 냉전 지대가 사라지고, 두 패권 국가(G2)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경제에 돌파구가 되고, 동북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북한 개방이 성공하려면 체계적인 경제개혁과 국제사회 지원이 필요하다.

이 늦깎이 개방들은 하나같이 극적이었다. 중국 개방은 옛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중 접근이 출발점이었다. 이 전략은 적중해 결국 옛 소련을 무너뜨렸다. 중국 개방은 G2 시대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베트남 개방에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베트남과 미국의 수교,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군, 베트남·미국의 중국 견제가 얽혀 있었다.

미얀마 개방은 경제제재 해제, 대미 관계 정상화 없이 불가능했다. 미국은 민주화를 요구했다. 군부독재로 국제사회 '왕따'였던 미얀마는 체제 붕괴 위기를 느낀 군부가 권력 일부를 내놓고 점진적 민주화를 단행했다. '철의 난초'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집권해 정권교체를 이뤘다. 내수 시장이 커 개방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인도는 네루식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고 개방한 뒤 '잠에서 깨어난 코끼리'가 됐다.

사회주의 경제 국가들의 개방이 드라마틱했던 것은, 그것이 결단과 도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고, 성장이 빠르고, 거리가 가까워, 질 좋은 시장인 이 나라들의 지각 개방은 한국 경제에 축복이었다. 아시아에는 평화를 가져왔다. 냉전시대 전면전과 국지전, 내전이 발생했던 동남아는 중국과 베트남의 개방 후 평화가 지속하고 있다. 미얀마 개방은 이 나라 소수민족 분쟁 해결의 분수령이다.

사회주의 북한의 성공적인 개방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번영과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번영, 개방, 평화의 물결은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앞으로 나아간다. 한국민의 평화 의지는 강물을 밀어내는 뒷심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갑자기 취소됐다. 비핵화 협상이 어려울수록 3차 남북정상회담, 2차 북미회담을 응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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