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의 토실토실 살 오른 가을 미꾸리와 지리산 청정 시래기의 조합

광한루원 일대 50여곳…전국적으로 500여곳 '남원 추어탕' 간판 걸고 성업 중

(남원=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여름이 삼계탕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추어탕의 계절이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토실토실 살을 찌운 영양 만점의 미꾸라지가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를 뜻하는 한자 추(鰍)가 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로 만들어진 것도 아마 그런 연유에서일 테다.

추어탕의 원조는 단연 '춘향전의 고장' 전북 남원이다.

'남원추어탕'이란 이름을 내걸고 성업 중인 업소만 전국에 500여개에 달한다.

◇ 어려웠던 시절 농부와 서민의 든든했던 보양식

남원은 예로부터 섬진강과 지리산을 끼고 있는 청정한 농경 지역이다.

섬진강은 추어탕의 핵심 재료인 미꾸라지를 키워내고, 지리산은 추어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시래기를 선사한다.

가을이면 맑은 섬진강 지류 곳곳에서 미꾸라지가 살을 찌우고, 지리산 자락의 청정한 공기 속에서는 시래기로 쓰일 무청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런 풍성한 재료 덕분에 남원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을이면 집집마다 추어탕을 끓여 먹었다.

넉넉히 살이 오른 미꾸라지와 시래기로 만든 추어탕은 배고픈 시절 농부들과 서민들의 든든한 보양식이었다.

실제 미꾸라지의 보양 효과는 예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은 "미꾸라지가 성질이 온하고 맛이 달아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멎게 한다"고 했고, 조선의 명의 황필수는 '방약합편'에서 "미꾸라지는 기를 더하고 주독(酒毒)을 풀고 당뇨병을 다스리며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약학서 '본초강목'도 "미꾸라지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양기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고 극찬했다.

실제 영양학적으로 추어탕은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해 원기를 회복해 주는 데 제격이며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아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토속음식으로 폭넓게 사랑받던 남원 추어탕이 본격적으로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50년대 말이다.

남원의 대표적 관광지인 광한루원 주변에 추어탕 전문점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다.

1959년에 문을 열어 60년 가까이 한결같은 맛을 자랑하는 '3대원조 할매추어탕'과 '새집추어탕'이 그 시작이다.

값싸고 맛 좋으며 영양 많은 추어탕이 광한루원을 찾는 관광객과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추어탕 집은 꾸준히 늘었고 현재는 5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남원시도 이 일대를 '추어탕 거리'로 이름 붙이고 남원추어탕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맛 좋고 먹기 좋은 조리법 덕에 국민 음식으로 발돋움

남원추어탕이 온 국민의 음식으로 사랑받게 된 것은 독특하면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도 한몫했다.

1950년대만 해도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어 끓인 서울식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보기에도 좋지 않고 먹기에도 불편해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은 뒤 갈아서 뼈를 발라내기 때문에 어린아이도 아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여기에 된장으로 간을 맞추고 시래기와 함께 입맛에 따라 들깨, 토란대를 넣어 푹 끓인다.

입맛에 따라 초피나 산초가루를 뿌려 먹기도 한다.

남원추어탕은 원래 미꾸라지가 아니라 '미꾸리'로 만들었다.

미꾸라지는 몸통이 납작한 편인 데 반해 미꾸리는 몸통이 동그란 게 특징이다.

그래서 미꾸라지는 '넙죽이', 미꾸리는 '둥글이'로 불린다.

미꾸리는 미꾸라지보다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맛이 좋다.

미꾸리를 이용하는 남원추어탕이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미꾸리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 요즘에는 남원의 추어탕 전문점들도 주로 미꾸라지를 쓸 수밖에 없다.

다만 남원추어요리협의회에 가입된 전문점들은 미꾸라지든 미꾸리든 100% 국내산을 고집한다.

미꾸라지 요리는 추어탕이 전부가 아니다.

남원의 추어탕 전문점을 찾았다면 추어 숙회와 추어 튀김, 추어 전골도 꼭 한번은 맛봐야 한다.

숙회는 미꾸라지를 뜨거운 물에 통째로 익힌 것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야채와 함께 먹으면 미꾸라지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튀김은 미꾸라지에 밀가루를 입히거나 풋고추에 미꾸라지를 넣어 기름에 튀긴 것으로 부드럽고 비린내가 나지 않아 좋다.

추어 전골은 미꾸라지를 갈아 만든 육수에 갖은 야채를 넣고 끓인 것으로 얼큰한 국물 맛이 그만이다.

◇ 남원추어탕의 변신은 무죄…즉석 추어탕으로 세계 입맛 겨냥

남원추어탕은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겨냥하고 있다.

남원시는 이마트와 손잡고 8개월간의 연구 개발 끝에 '즉석 남원추어탕'을 개발해 전국에 유통하고 있다.

이 추어탕은 남원에서 생산된 미꾸라지와 시래기로 만든 추어탕을 살균 처리한 것으로 뜨거운 물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즉석에서 먹을 수 있다.

이마트는 이 상품을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신세계 그룹의 모든 유통채널에서 판매하고 중국, 베트남, 몽골 등 해외 점포에도 수출할 방침이다.

남원추어탕의 원래 재료였던 미꾸리를 대량 생산하는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남원시는 2020년까지 70억원을 들여 주생면에 4만2천700㎡ 규모의 미꾸리 양식단지를 조성한다.

자체 보유한 뛰어난 미꾸리 생산기술을 적용, 이 양식단지에서 고품질의 미꾸리를 생산해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남원시농업기술센터가 농가들과 손잡고 미꾸리를 대규모로 양식하는 작업도 본궤도에 올라있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추어 전과 무침, 전골 등 미꾸라지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법도 개발하고 있다"며 "남원추어탕과 추어 요리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만들어 남원의 이미지를 높이고 농가 소득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doin1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