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사용에 카드깡까지 방만 집행…도덕적 해이

공개 주기·범위 천차만별…매년 예산 증가

시민단체 "사용 제한하고 세부내역 적극 공개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관광성 해외연수 지원, 주점·공휴일·심야시간대 사용, 동료의원 선물 구매, 동호회 활동비 지원…

당최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위 활동의 공통분모는 '업무추진비'다.

지방자치단체를 잘 감시하고, 견제하라고 뽑아 준 지방의원 중 일부가 본연의 역할은 망각한 채 주민 혈세로 이뤄진 공적 비용을 사적으로 펑펑 써댄 것이다.

지방 살림을 꾸려나가는 지자체 역시 매년 수십억원을 업무추진비로 편성하고, 부적절한 사용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혈세를 마치 쌈짓돈처럼 쓴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었지만,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있다.

선거철이면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응답이 없다.

◇ 업무추진비는 눈먼 돈?

최근 대전 서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미 의원의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의원이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구의회 상임위원장 업무추진비 법인카드로 가족들과 식사를 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김 의원이 가족에게 제공한 식대 20여만원이 유권자나 선거 사무원을 상대로 한 기부행위가 아닌 만큼 경고 조치했으나 도덕성 논란이 계속됐다.

김 의원은 당원 자격정지 1년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최근 경남 양산시의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이 문제가 됐다.

나동연 전 양산시장이 현직이던 지난해 허위신용카드 결제로 현금을 융통하는 속칭 '카드깡' 수법으로 업무추진비 일부를 현금화한 뒤 유용한 의혹(업무상 횡령)으로 고발당해 경찰 수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나 전 시장은 특별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당시 시장 비서실에 근무하던 직원은 업무추진비 유용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행동강령 점검결과에서도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모 도의회 상임위원장은 2016년 7월부터 1년 동안 업무추진비 사용이 제한된 공휴일과 오후 11시가 넘은 심야에 정당한 사유 없이 17회에 걸쳐 265만원을 썼다.

한 시의회 의장은 2015년 3월 동료 의원에게 명절선물을 한답시고 9만9천원 상당 물품 21개를 업무추진비 카드로 긁었다.

게다가 의정 활동비를 받고 있음에도 휴대전화비, 태블릿 PC, 교통비 등 지원 명목으로 예산을 쓰거나 법적 근거 없이 동호회 활동비를 부당하게 받았다.

모두 감사의 사각지대에서 혈세를 쌈짓돈처럼 사용한 것이다.

국민권익위는 지방의회에 편성된 예산을 부당 집행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지방의회 예산집행의 사후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해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에 권고했다.

◇ 지방 곳간 텅텅 비어도 매년 예산 늘려

지방 곳간이 텅텅 비어가도 매년 적지 않은 예산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업무추진비 몫으로 돌아간다.

제주도의 올해 업무추진비 예산은 52억715만6천원으로 전년도 49억5천672만1천원보다 5.1% 늘었다.

제주도의회의 올해 의회운영 업무추진비도 2억7천360만원으로 전년도 2억2천560만원보다 21.3% 늘었다.

인천시 전체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는 2016년도 10억9천400만원, 2017년 11억9천600만원, 2018년 13억5천800만원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광주시의 올해 업무추진비는 지난해 29억6천600만원에서 올해 30억3천600만원으로, 경남도는 지난해 34억4천100만원에서 올해 35억6천300만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이 밖에 대부분의 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행정안전부에서 매년 통보하는 편성기준에 맞춰 기준액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게 업무추진비를 편성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추진비를 줄이려는 깊은 고민이나 노력의 흔적 없이 관성처럼 전년도와 비슷하거나 소폭 늘리는 방식이어서 언제든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

인원과 부서가 매년 증가하기 때문에 정원, 부서운영 명목으로 쓰는 업무추진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해당 자치단체는 해명하고 있다.

사용내역을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하지만 공개 주기나 범위는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고, 정작 주민들이 원하는 세부내역은 빠진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용도가 자유롭다는 점에서 집행내역 대부분이 식사나 선물 구매비 등으로 방만하게 운영될 소지가 많아 시민단체의 비판을 사고 있다.

◇ 경조사비도 업무추진비로 허점 투성…"저비용 고효율로 바꿔야"

시민단체들은 업무추진비의 허점을 지적한다.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은11일 "업무추진비는 말 그대로 공적 업무에 필요한 용도로 써야 하는데 경조사비를 업무추진비로 낼 정도로 경계선이 애매한 부분이 많다"며 "업무추진비 지침에 맞게 용도를 명확하게 하고 사용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자체들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지만, 제한적 내용이 많다"며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할만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상세히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0만원 이상 쓰게 되면 참석자 명단까지 기재하게 되어있어 50만원 미만으로 끊어 쓰는 것도 문제다.

강호진 제주주민자치단체 대표는 "일부러 46만원, 48만원 두차례 결제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업무추진비가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50만원 기준을 10만원으로 낮추고 참석자 명단뿐 아니라 어떤 생산적인 정책 제언이나 문제 해결 방안 등을 논의했는지 등의 내용도 모두 기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울산시민연대 관계자도 "49만원씩 끊어 쓰기를 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어디서 업무추진비를 썼는지 등 세부내역을 항상 시민에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업무추진비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푼의 혈세라도 아끼겠다는 소신을 지키는 자치단체장도 있다.

오규석 기장군수의 업무추진비는 2년째 '0원'이다.

오 군수는 지난해와 올해 군수에게 배정된 업무추진비를 편성하지 않은 데 이어 내년 예산안에도 업무추진비를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기장군은 부서별 시책 업무추진비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편성한도액 2억5천300만원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7천710만원만 편성했다.

기장군 관계자는 "업무추진비를 줄여서 2년째 군정을 운영한 결과 업무의 효율성 면에서 현재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고비용 저효율의 행정을 저비용 고효율의 행정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현 류성무 김재선 이정훈 변우열 한종구 장영은 임보연 최찬흥 김호천 강종구 박영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