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벌칙 가하고 정치권은 비난…국가 내용 둘러싸고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국가가 인종차별적이고 애보리진(호주 원주민)을 존중하는 게 없으니 일어나지 않겠다."

호주 퀸즐랜드주 주도 브리즈번의 9살 난 백인 초등학생이 국가 '아름다운 호주여 전진하라'(Advance Australia Fair)가 인종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다며 항의 표시로 국가 연주 때 일어서지 않아 학교 측으로부터 벌칙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에 정치권이 어린 소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서면서 호주 사회가 국가를 둘러싸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CNN 등에 따르면 브리즈번 켄모어사우스스테이트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하퍼 닐슨은 최근 열린 학교 행사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 측은 닐슨이 노골적으로 국가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과 후 학교에 일정 시간 남아있도록 하는 디텐션(detention) 처분을 내렸다.

학교 측은 더 나아가 닐슨에 대해 정학 처분을 내릴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닐슨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진하라'는 제목에서 전진은 백인들을 의미하며 '우리가 젊다'(we are young)'라는 대목은 5만 년 전부터 호주 땅에 살았던 애보리진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나이 든 사람이 만든 규칙을 그들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단순히 따르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닐슨을 비난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브리즈번시(市) 폴린 핸슨 상원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에서 닐슨을 '버릇없는'(brat) 아이라고 지칭하면서 "닐슨을 학교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비난했다.

퀸즐랜드주 예비내각(섀도캐비닛) 장관이면서 호주 자유국민당 중도우파 의원인 제러드 블레이지는 "닐슨 부모가 딸을 정치적 노리개로 삼고 있다"며 "닐슨의 주장은 어리석은 것으로, 닐슨은 일어나서 자랑스럽게 호주 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레이지 의원은 "국가가 연주될 때 일어서기를 거부하는 것은 호주와 참전용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닐슨이 지금처럼 계속 버릇없는 아이처럼 행동하면 정학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들과 달리 닐슨의 용기를 칭찬하는 목소리도 있다.

호주 언론인이자 텔레비전방송 진행자인 조지 가드너는 "닐슨이 국가의 내용을 꼼꼼하게 짚어보고 깊이 생각한 것은 칭찬할 만한 것"이라며 "대부분의 사람은 국가가 담고 있는 내용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부른다"고 주장했다.

닐슨의 부모는 딸의 행동을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 마크 닐슨은 "딸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용감함을 보여줬다"면서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자기 뜻을 분명히 표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닐슨 사건을 둘러싸고 미국프로풋볼(NFL) 일부 선수들이 경찰의 흑인 폭력 진압 등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가 연주될 때 무릎을 꿇는 '무릎 꿇기'를 연상하게 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릎 꿇기를 반(反)애국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트위터 등을 통해 맹비난한 바 있다.

kyung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