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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香萬里> 미국 대통령 꿈꾸며 시대와 맞선 세 명의 여성

송고시간2016-03-19 09:30

뉴햄프셔대 피츠패트릭 역사학 교수 '가장 높은 유리 천장' 출간

빅토리아 우드헐·마거릿 체이스 스미스·셜리 치좀 집중 조명

(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8년 전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 레이스에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뉴햄프셔 주 세일럼의 한 유세장에서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미국의 변화를 강조하며 표심을 모으던 중에 한 남성이 "Iron my shirt"(내 셔츠를 다려라)를 연달아 외치며 유세를 방해했다. 그는 같은 구호가 적힌 노란색 종이 피켓도 들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여자가 집안일이나 할 것이지 웬 대통령 도전이냐는 시위였다.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유세를 중단한 클린턴 전 장관은 "성차별주의가 아직도 살아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민주주의가 다른 나라보다는 발달한 미국이지만 선거판에서 성차별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사례이다.

하지만 클린턴 전 장관이 겪었던 봉변은 이전 여성 출마자들이 겪은 고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것이었다. 가시밭을 헤치고 길을 만든 여성 정치인들이 있었기에 클린턴 전 장관이 당한 성차별은 청중들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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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햄프셔대 역사학과 교수인 엘렌 피츠패트릭이 지난달 출간한 '가장 높은 유리 천장'(The Highest Glass Ceiling)은 미국 대통령을 꿈꾸며 시대와 싸웠던 여성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피츠패트릭 교수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가 받은 편지를 묶은 '재키에게 보낸 편지'(Letters to Jackie: Remembering President Kennedy)를 출간한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저자는 사실상 대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와 저항하려고 출마한 세 여성의 삶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맨 먼저 등장한 인물은 1872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빅토리아 우드헐.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중개업을 한 우드헐은 결혼과 이혼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자신도 결혼을 두 번 했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끝내고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던 시절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우드헐의 이력과 신념은 '너무나 튀는' 것이었다.

우드헐은 대선 출마를 2년간 준비했고 그 일환으로 주간 신문사도 차렸다. 남녀평등을 모토로 한 '평등권 당'(Equal Rights Party)도 만들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한 명의 선거인도 확보하지 못한 참패였다.

미국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것이 이로부터 48년 뒤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선거를 통해 우드헐이 남녀차별의 벽을 깨려고 몸부림쳤다는 사실이었다.

한 신문은 출마 당시 34세에 불과했던 그녀를 '기운 센 월스트리트의 어린 암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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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두 번째로 소개한 여걸은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그녀는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되기 위해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셨다.

연방 하원의원이었던 남편의 사망으로 의원직을 물려받아 정치에 입문한 그녀는 이후 자력으로 상원의원이 돼 상·하원을 모두 경험한 첫 여성이었다.

66세의 나이에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 스미스는 고령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편견과 힘겹게 싸웠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5위에 그쳤다.

하지만 미국 주요 정당의 전당대회에 이름을 올린 첫 여성이라는 기록을 얻었다.

흑인이자 여성인 셜리 치좀도 미국 정치사에 획을 그은 인물로 소개됐다.

그녀가 1972년 민주당 후보가 돼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얻은 '흑인 첫 미국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에게 붙을 수 있는 '미국 첫 여성 대통령' 타이틀은 모두 치좀의 것이 됐을 것이다.

치좀은 선거 캠페인에서 인종차별은 물론 성차별과 싸워야 했다.

특히 성차별은 심각했다. 같은 당의 남성 의원들조차 그녀의 후보 자격 박탈을 희망했을 정도였다.

치좀은 "흑인으로서보다는 여자로서 더 많은 차별을 당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주요 매체가 잇따라 소개하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 코니 슐츠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투쟁해야 할 시대에 투쟁하고 대가를 치른 세 사람을 상세하게 다뤘다"며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그들이 싸우는 길 외에는 길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 서평을 실은 '빅 걸스 돈 크라이'(Big Girls Don't Cry)의 저자인 레베카 트레이스터는 "우리가 만든 어떤 역사도 그냥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평했다.

하버드 유니버시티 프레스 출판. 318쪽.

su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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