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양어장 구석에서 골프 익힌 정슬기 "엄마…" 부르며 눈물

기자회견 도중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에 눈물을 흘리는 정슬기.[KLPGA 제공]

(용인=연합뉴스) 권훈 기자= "우승해서 꼭 우승컵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9일 경기도 용인 써닝포인트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G·이데일리 레이디스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정슬기(23)는 '엄마' 얘기를 하다가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머니는 정슬기가 중학교 2학년 때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북 봉화군 시골 양어장 겸 식당 한구석 빈 땅에 타석을 만들어 어렵게 꿈을 키우던 딸이 제대로 골프 선수의 길을 채 걷기도 전이었다.

정슬기는 "비록 먼 곳으로 가셨지만, 저를 지켜보면서 기뻐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며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드림투어에서 활동하던 201년에 딱 한 번 KLPGA투어 대회에 출전해 기록상 데뷔는 2015년이지만 정슬기는 2016년부터 KLPGA투어에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2016년에 데뷔한 이정은(22), 이소영(21), 이다연(21) 등과 달리 정슬기는 국가대표나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적이 없었다.

정슬기는 "차를 타고 20분을 나가야 연습장이 있는 시골에서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양어장 겸 식당을 하던 아버지가 구석 빈 땅에 타석을 만들어서 거기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수도권으로 옮겨 제대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2부투어에서 3년을 보낸 끝에 KLPGA투어에 입성한 그는 우승은커녕 하루하루 버티는 게 과제였다.

정슬기는 "너무 마구잡이로 배워서 성적을 올릴 수 없을 거라 좌절한 적도 있었지만 정작 투어 프로가 된 뒤에 점점 발전하는 나를 보고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구잡이로 배운 골프는 정슬기에게 커다란 무기를 안겨줬다.

"어릴 때부터 연습장에서 볼만 때리다 보니까 드라이버든 페어웨이 우드든 아이언이든 풀스윙하는 샷은 잘한다"고 정슬기는 자랑했다.

역경과 사연이 적지 않지만, 어머니 얘기 때 말고는 그늘 없는 생기발랄한 정슬기의 표정은 이런 '긍정의 힘'에서 비롯됐다.

"내가 자랑스럽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를 증명했기에 뿌듯하다"는 정슬기는 이 대회 우승 전에는 시드 유지가 위험한 상금랭킹 57위였던 사실에 "심리적 부담은 많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 경기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정슬기는 "앞으로 남은 7개 대회 가운데 메이저대회도 2개나 있다. 최대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딴 건 몰라도 체력은 자신 있다"고 장담했다.

정슬기는 "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어보고 싶다"며 이날 깜짝 우승을 넘어 더 큰 무대를 향한 꿈을 살짝 공개했다.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