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석 "서동하 같은 인간이 과연 반성할까요?"
송고시간2014-06-19 06:30
KBS '골든크로스'서 탐욕에 사로잡힌 인물의 광기 열연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제 종영까지 단 1회 남았다. 시청자의 관심은 서동하가 벌을 받는 인과응보의 실현에 쏠려 있다. 과연?
KBS 2TV 수목극 '골든크로스'에서 '악의 화신' 서동하를 연기하고 있는 정보석(52)은 "서동하 같은 인간이 과연 반성을 할까 싶다"며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지막회 20회가 방송되는 19일 오전까지 촬영을 진행해야하는 그를 지난 17일 전화로 만났다.
정보석은 '드라마가 권선징악으로 끝나냐'는 질문에 "글쎄…"라고 답했다.
'골든크로스'의 시청률은 저조했다. 하지만 서동하를 연기하는 정보석의 '천의 얼굴'은 명불허전이었다. 서동하 캐릭터만 놓고 보면 인터넷에서 그 화제성은 시청률 20~30%가 부럽지 않았다.
정보석은 그러나 "대본이 잘 씌어 있기 때문에 누가 맡아도 그런 느낌을 냈을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하지만 시청자는 안다. 정보석이었기 때문에 서동하가 치 떨리는 캐릭터로 완성될 수 있었음을.
골프채로 불륜 상대인 어린 연인을 살해하고, 그것을 캐고 다니는 연인의 오빠를 납치해 죽인 후 매장하고, 의견이 틀어지자 40년 지기 친구를 차로 밀어버리는 등 서동하의 극악무도함은 불순물 없이 순도 100%를 자랑한다.
그러면서 돌아서서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위기에 처했다싶으면 바로 비굴 모드로 들어가고, 딸을 대할 때는 이보다 더 자상한 아빠가 없다.
"악역을 한다는 건 즐겁잖아요. 평소에 못할 일을 연기로 하니까 신나죠."
정보석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서동하에 대해 "자기가 그런 악행들을 했다는 것을 곧 잊어버리고 안 믿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리플리 증후군'(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지어낸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망상장애)라고나 할까, 서동하는 평생을 자기 편한대로 기억하고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거죠. 어떤 면에서 보면 순진하기도 해요. 전체 인성이 골고루 발전해야하는데 과거에 트라우마가 있었든지 다른 이유가 있었든지 서동하는 제대로 인성이 발달하지 못한 거죠. 자기가 원하는대로만 하려고 하는, 균형감을 상실한 인물이죠."
앞서 정보석은 '자이언트'의 악한 조필연을 연기할 때는 '이유 있는 인물'이라며 '악역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동하에 대해 "절대 동조하거나 연민을 느낄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엔 그가 갖고 누린 것이 너무 많다"며 "이러한 인물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서동하는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경제인으로, 경제부총리에까지 지명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자리까지 오르는 데 수많은 악행을 '즈려밟았다'. 드라마는 그런 서동하를 비롯해 한국 상위 0.001%들의 비밀클럽 '골든크로스'를 배경으로 이들의 암투와 음모를 그린다.
"욕심과 이성이 균형을 이뤘다면 서동하처럼 안됐겠죠. 하지만 서동하는 오로지 개인의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거죠.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갖다 붙이는 데 능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살인행위조차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면 살인도 하는 거죠. 그에게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고, 그 대의를 위해서는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정보석은 "문제는 서동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그런 성향이 실제 살인행위와 같은 극한까지 안 갈 뿐이지 서동하와 같은 인물을 현실에서 종종 볼 수 있다"는 말로 서동하가 결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윤리와 도덕은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내달리는 인간들을, 그리고 그들이 휩쓸고 간 자리가 어떻게 폐허로 변하는지를 드라마 '골든크로스'가 아니어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숱하게 보아왔다.
"서동하 같은 심리를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에게 내재한 위험성이 가려지지만, 목표 달성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원하는 힘을 갖지 못하면 살인마가 되거나 사이코패스가 되거나, 묻지마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런 인물들은 분명히 성장과정에서 잘못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석은 다만, 서동하의 경제적인 마인드에는 일정부분 공감한다고 밝혔다. 보이지 않는 큰손들의 검은 놀음이 금융시장을 어떻게 주무르는지를 까발린 '골든크로스'에서 배우들은 전문적인 경제정책과 금융시스템을 대사를 통해 수시로 거론했다.
"이 만큼 나이를 먹다보니 경제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게 되죠. 그런 관심이 이번 작품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서동하에게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에게 조금의 이성이나 윤리의식이 있었다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됐을 거라는 것이죠. 실제로 그가 극중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실제 정책적으로 채택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 상위 0.001%들의 비밀클럽 '골든크로스'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존재하지 않을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을 것 같고, 지금도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할 것 같습니다."
pretty@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4/06/19 06: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