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전 대통령 후손 증언…"핵무기, 우리 모두 위협""할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발전된 한국 모습 기뻐할 것"

(시카고=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할아버지가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 결정을 내렸지만, 그 피해의 참상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를 승인하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를 신속히 소집해 참전을 결정한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재임기간 1945∼53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한국전쟁 당시 원폭을 사용하지 않은 한 이유라는 후손의 증언이 나왔다.

트루먼 전 대통령의 외동딸 마거릿 트루먼의 장남인 클립튼 트루먼 대니얼(58·전업작가)은 연합뉴스·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외할아버지인 트루먼 전 대통령의 한국전쟁 관련 과거 발언 및 증언, 기록 등을 회고하면서 이같이 전했다.

인터뷰는 지난 8일(현지시간) 미 일리노이 주(州) 시카고 외곽의 노스 킬번 자택에서 이뤄졌다.

청색 와이셔츠에 짧은 흰색 수염을 기른 소탈한 차림의 대니얼은 "6살 때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았고, 할아버지가 평소 대통령의 직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주요 현안에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얘기를 하나하나 풀어갔다.

대니얼은 먼저 "원폭 투하와 관련해 할아버지는 항상 미국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또 전쟁을 단축하고 끝내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말을 해 왔다"면서 "할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복을 거부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원폭 같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정을 옹호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할아버지는 원폭 투하에 따른 도시 파괴와 더불어 수많은 목숨, 특히 여성과 아이 등 민간인의 목숨이 희생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더욱이 히로시마의 첫 번째 원폭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순식간에 투하된 데 대해 할아버지가 약간 놀랐다는 당시의 언론 보도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 할아버지가 즉각 원폭 통제권을 군(軍)으로부터 회수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대니얼은 특히 "한국전 당시에도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그 지지자들의 전략 중 하나는 중공군이 북한 지원에 나서지 못하도록 북 ·중 국경 지역에 핵무기를 투하해 황무지로 만드는 것이었으나, 원폭의 참상을 목도한 할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트루먼 전 대통령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하던 1950년 11월 30일 '핵무기를 비롯한 모든 무기를 한반도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이후 줄곧 미국이 원폭을 투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대니얼은 원폭 피해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2012년 8월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위령비를 방문했던 사실을 밝히면서 "당시 현장에서 어떤 평안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어릴 때 원폭이 전쟁을 끝내고 수백만 명의 목숨도 구한 위대한 것으로 생각하며 자랐으나, 원폭이 낳은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원폭피해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이제는 중간지점으로 왔다. 그렇다고 완전히 정반대 쪽으로 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아직 완전히 정반대 쪽으로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이 전쟁기간 한국과 중국에 대해 저지른 행동(전쟁범죄)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있고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의 일부 인사들이 과거의 일들을 일부 부인하거나 경시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쉬운 문제가 아니다"고도 했다. 원폭 투하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로써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에둘러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핵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대니얼은 이어 "핵무기 한 발이면 뉴욕이든 시카고든 서울이든 50만㎡가 초토화되고 10∼15발이면 핵폭탄 폭발 시 발생하는 먼지구름이 태양을 차단해 결국 범지구적인 냉각상태가 도래한다. 핵무기는 우리 모두를 위협한다"며 핵 군축 및 핵무기 개발 중단 필요성을 제기했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서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 다른 나라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핵무기를 활용하는 것 같다. 미국이 여전히 북한을 겨냥한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핵을 둘러싼) 대치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이라면서 "'내 것은 유지할 테니 네 것은 없애라'는 태도로는 북한에 핵을 포기시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구촌 전체가 핵무기 폐기에 나서야 함을 강조한 차원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2013년 7월 유엔군 한국전 참전·정전 60주년 행사에 초대받아 처음으로 방한했던 대니얼은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대니얼은 "한국은 매우 아름다운 나라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서 오늘날의 발전된 한국을 봤다면 매우 기뻐했을 것"이라면서 "한국이 단순히 아름답고 발전된 안정적 민주국가라서가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고 특히, 한국전 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당당히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후 60년 넘게 분단상태가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방한 당시 방문했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남북한 군인들의 마주 선 경계 상황을 떠올림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통일에 대한 큰 염원이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만약 남북이 통일돼 하나가 되면 멋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최근 고조되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및 재무장 움직임에 대해 주변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우려가 크다는 질문에 대니얼은 "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극우단체 회원들이 탄 검은 트럭들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며 뭐라 외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대다수 일본인은 재무장을 원치않고 더 큰 군대를 원치 않는다. 1930년∼1940년대의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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