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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다] 지건길 이사장 "문화재 환수에는 인간적 교감이 중요"

송고시간2018-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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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가 어려운 경우는 현지 활용이 최선"

"기증이 가장 바람직, 매입 과정에 대기업 참여가 있으면 좋을 것"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문화재 환수는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갖고 꾸준히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건길 이사장은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이선제 묘지'를 기증받은 사실을 예로 들며 "우리의 간절한 설득이 통해서 소중한 문화재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 이사장은 "모든 국외문화재가 환수 대상은 아니다"라며 "되돌려 받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현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만나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를 환수할 목적으로 2012년 7월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오는 11월에는 미국 LA지역에서 독립운동 관련 유물 발굴에 나선다.

--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올해 설립 6주년을 맞았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 국외 문화재라고 해서 전부 환수 대상은 아니다. 외교적 채널이나 선물, 정식 루트를 통해 매입한 경우는 환수할 수 없다. 약탈, 도난에 의해 나간 것만 환수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은 외국에 나가 있는 문화재가 대부분 약탈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사정이 다르다.

환수 방법은 매입, 기증, 문화재 협정에 의한 것이다. 재단설립 이후 환수한 주요 문화재는 불과 15점 정도이다. 절차상 어려움이 많다. 인내심을 갖고 해야지 당장에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 어느 정도 매입을 하고 있나.

▲ 재단에서 모니터링을 통해 세계 각국의 옥션에 나와 있는 유물 리스트에서 우리 유물을 찾아낸다. 중요한 것을 골라내서 옥션에 참여해서 사들인다. 액수가 크고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별해서 꼭 필요한 것만 사들인다.

재단의 올해 예산이 49억9천500만원 정도이다. 인건비가 15억 정도이고 나머지가 사업비이다. 꼭 사야 하는 유물이 있으면 문화재청에서 별도로 기금을 얻기도 한다. 기부금에도 의존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기증이다. 모양새도 좋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

-- 문화재 협정에 의한 환수는.

▲ 예를 들면 1965년 한일협정에 '문화재,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 들어가 있다. 당시 정부 대표들이 일본에 4천500여점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실제로는 1천500여점밖에 받지 못했다.

미국과는 수사 공조체계가 이루어져 있다. 미국 공공박물관에 소장된 우리 유물 가운데 도난, 약탈로 반출된 것은 우리에게 돌려주도록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던 문정왕후어보와 현종 어보가 지난해 7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전용기에 실려 국내로 돌아온 것이 좋은 예다.

-- 보존처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 반출된 유물 중 한지에 그려진 불화나 한국화 등 회화류가 많다. 외국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처리방법도 몰라서 수장고에 그대로 묵혀있다. 가져오라고 해서 보존처리도 해주고, 경우에 따라 우리가 가서 해주기도 한다.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전부 우리 비용으로 하는데 처리비용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복원 전문가들을 상대로 우리 회화의 보존처리 체험 행사를 가졌다. 배접, 장황(표구) 등 보존처리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가졌다.

-- 문화재 현지 활용도 바람직하다.

▲ 환수받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현지 활용이 중요하다. 약탈, 도난이 아닌 선의로 나간 것은 현지에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외규장각 도서는 세계 도서사상 가장 아름다운 유물이다. 파리의 기메박물관 같은 데서 전시해 우리의 훌륭한 도서문화를 알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직지심체요절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다. 현재로는 현지에서 전시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 이사장 재직 기간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 첫째는 올해 초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프랑스에서 돌아온 것이다. 순조의 며느리 효명세자빈의 책봉 죽책은 병인양요 당시 사라졌다. 프랑스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 외에도 여러 유물을 약탈했는데 도서류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됐고 나머지 유물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의궤나 실록에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실물의 행방을 모르니 프랑스 사람들이 불살라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경매에 나왔다. 그야말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한 것이라서 비싼 가격이지만 구입했다. 당시 외국계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가 20만 달러를 기부했다.

또 하나는 지난해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이선제 묘지를 기증받은 것이다. 도자기에 고인의 내력 등을 써서 무덤에 묻은 것이 묘지이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였던 이선제의 묘지는 1998년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2014년 이를 일본에서 찾아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몇 년에 걸쳐 간절히 설득해서 기증받았다. 환수는 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 교감이 필요하다.

--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 환수 이야기가 나오면 상대방이 일단 움츠러든다. 더구나 2012년 한국인 절도범이 일본 대마도 간논지에서 불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오고, 그 불상이 서산 부석사에서 사라진 것으로 밝혀진 사건의 여파로 일본에서는 거의 일을 할 수가 없다. 이 불상을 놓고 부석사와 간논지의 법정 싸움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 이후로는 유물을 보자고 해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문화재가 일본에 가장 많이 나가 있는데 일본이 저렇게 나오니 어려운 점이 많다.

--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복원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 원래 고종이 내탕금을 내서 매입해서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1889년 입주했으나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이 단돈 5달러에 팔아치웠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것을 2012년 40억원을 주고 매입하고 100억원을 들여 수리했다. 관리 운영은 재단 직원 4명이 파견되어서 하고 있다. 처음이니까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면 좋겠다.

-- 문화재 매입 과정에 기업이 어느 정도 나서고 있나.

▲ 스타벅스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정원을 손질하는데 총 3억원을 기부했고, 라이엇 게임즈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사들이는데 20만 달러를 기부했다. 앞서 라이엇 게임즈는 2014년 석가삼존도를 사들일 때도 20만 달러를 기부했다. 대기업들도 참여하면 홍보 효과도 있고 좋을 텐데 대기업으로부터 뚜렷한 성과를 내세울 만한 기부는 아직 받지 못했다.

외국은 기업들이 문화재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40억원을 주고 매입 한 것은 협찬 없이 순전히 문화재청 예산으로 한 것이다. 미국에 나가 있는 기업들이 도왔으면 훨씬 모양이 좋았을 텐데 아쉽다.

-- 실태조사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 환수에 앞서 약탈, 도난, 선물, 구입 등 해당 문화재의 출처를 찾아야 한다.

지난 4월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는 17만2천점 정도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개인 다락방에 숨겨져 있거나 박물관에서 노출되지 않은 것까지 하면 몇 배가 될 것이다. 대충 7만점 정도 출처조사를 한 것 같다. 실태조사는 매년 6천점 정도 하고 있고, 실태조사를 하면서 출처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

-- 11월에 미국 LA에서 독립유산을 발굴한다.

▲ 독립기념관, LA 한국문화원, 재단이 함께 한다. 이곳에 우리 교민이 가장 많이 살고 독립운동도 활발했다.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노출하는 작업이다. 꺼내서 기증하려면 하고, 팔고 싶으면 팔도록 할 것이다. 독립운동에 사용된 유물들뿐 아니라 독립운동 하던 분들이 쓰던 생활용품도 모두 독립운동과 관련해서 소중한 자료이다. 현지에서 전시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 지건길 이사장은 1966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프랑스 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국립부여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경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했다. 1998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으로 갔다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 이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겸 매장문화재분과위원장,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 영월국제박물관포럼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거쳐 2016년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ke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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