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물 취득 등 혐의로만 기소…해적행위 공모·사주는 제외
관련국들 공조수사에 소극적…검사 방문 후에야 기록 넘겨받아

(서울·부산·자카르타·싱가포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1999년 2월 19일 인천지검에 하수인 3명과 함께 구속 송치된 이동걸씨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외국에서 발생해 한국 수사당국이 파고들기 힘든 사건인 데다 중국, 싱가포르 등에 있는 현지 공범들이 '해외 거주' 이유로 기소중지 조치가 내려진 상황이므로 본인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검찰은 텐유호 실종 사건의 핵심인 해적 습격 부분은 제외하고 장물 취득과 증거인멸교사 등 다른 혐의로만 이씨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1·2심 재판에서 모두 3년형을 선고받자 상고했으며 2000년 3월에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3년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그러나 의혹이 매우 짙은 해적행위 공모·사주에 관한 내용은 검찰이나 법원에서 끝내 규명되지 못했다.

◇ '해적행위 의심'

1심 법원의 1∼5차(1999년 4월 2일∼7월 30일) 공판 기록에 따르면 검찰은 이씨가 다야 테크놀로지의 소유주 베니 반이 주도한 이번 사건의 '실무총책'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는 알루미늄을 사들이고 팔아넘긴 것은 베니 반의 지시에 따른 것이고 장물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법정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인천지검 형사3부 소속 주임검사로서 수사뿐만 아니라 공판 과정에도 꾸준히 참여한 곽규홍 검사(현 청주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장)는 "이동걸이 범행 관련 사안을 모두 부인함에 따라 공소유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해경과 검찰 등 우리나라 수사기관들은 산에이-1호 승선원들을 수사한 중국 측에 공조 요청을 수차례 했으나, 요청에 제대로 답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증거 불충분'으로 이동걸씨를 석방해야 하는 상황이 올 뻔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장물 처분마저도 처벌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수사기관들은 부랴부랴 움직였다. 경찰청은 당시 조민오 홍콩총영사관 치안관을 급거 귀국시켜 검찰 송치 후에도 수사에 참여 중이던 해경 수사팀과 공조토록 했다.

조 전 치안관은 "만약 이동걸이 석방됐다면 텐유호 실종이나 장물 거래 사건은 물론 선박 발견 직후 설계도 13장과 사본을 소각한 증거인멸과 증거인멸 교사 건 등도 물거품이 됐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곽 검사는 중국 측이 공조 요청을 시종 묵살하고 있다고 판단해 직접 가서 부딪혀보겠다는 각오로 1999년 7월 장쑤성 쑤저우를 방문했으며, 이를 통해 산에이-1호 선박에 관한 사진 등 자료, 산에이-1호 승선원 16명의 신문조서, 이동걸씨로부터 알루미늄괴를 매입한 콘스탄트사 관계자의 조서 등 자료를 일부 받을 수 있었다.

뒤늦게나마 현장 방문으로 중국 측 수사자료가 한국 수사당국에 입수됐다는 점은 1심 재판에 공판검사로 참여했던 김용정 변호사와 당시 해경청에서 형사반장으로 수사를 하던 김창권 전 경무관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 검찰이 현지 방문을 통해 힘들여 넘겨받은 장쑤성 공안청의 수사 자료는 분량이 650페이지 내외로 꽤 많았다. 그러나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15년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 자료가 폐기됐다.

수사 자료가 중국에 남아 있는지 여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2013년 중국경찰망에 텐유호 사건에 대한 비망록이 게시된 점으로 보아 장쑤성 인민검찰원이나 인민법원에 보관돼 있을 개연성이 있다.

1심 공판 검사였던 김용정 변호사는 중국 측 기록에 텐유호 탈취 이후 운항일정 등이 상세히 밝혀져 있어 장물취득 혐의 등으로 재판 중이던 이 씨에 대한 공소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곽 검사는 텐유호 사건에서 '이동걸의 해적행위 가담 혐의'와 '엄중한 선상폭력'을 언급한 중국경찰망 비망록 내용에 대해 "그 당시 중국 측이 제공한 수사 자료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렇지만 그런 내용으로 이동걸을 (해적사건으로) 기소하기에는 크게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재판장 "전혀 수사가 안 돼 있어"

1심과 2심 재판장이었으며 지금은 법원에서 퇴직한 조승곤 변호사와 손윤하 변호사는 모두 피고인 이동걸씨의 진술에 일관성이나 신빙성이 없어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유죄선고가 당연했다는 취지로 재판 상황을 설명했다.

피고인 이씨는 텐유호 적재 알루미늄의 거래 혐의에 대해 "장물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으며, 텐유호에 타고 있다가 사라진 신영주 선장과 박하준 기관장과의 지인 관계 여부를 묻는 재판장에게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곽규홍 검사는 1심 판결문을 인용해 "1982년 론슨호에서 (이동걸씨가) 1등 항해사로 있을 때 박하준 기관사가 3등 항해사로 함께 배를 탔는데도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며 신빙성 없는 진술을 탄핵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씨를 장물 취득 혐의 및 증거인멸 교사, 외국환 거래법 위반 등 3개 혐의로 기소했고 하수인 역할을 한 국내 공범 3명도 함께 기소했으나, 베니 반, 로저, 빌리 코 등 외국인 공범 3명은 수사가 불가능해 기소하지 못했으며, 텐유호 탈취 부분은 기소 내용에서 빠졌다.

하지만 검찰 측은 당시로써는 엄벌로 통하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해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못했으나, 이 씨에게 중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고 곽 검사는 설명했다.

검찰은 2심에서는 3년을 구형했다.

이 씨는 1심(1999년 7월 30일)과 2심(1999년 11월 11일) 선고에서 모두 3년 실형을 받은 뒤 상고했으나 2000년 3월 24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됐다. 기소된 국내 공범 3명은 모두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씩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장이었던 손윤하 변호사는 연합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심리를 진행하면서 이동걸 피고인이 선원들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줄곧 무언가 '흑막'이 있는 게 분명한데도 이를 밝혀내기에는 수사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라며 이례적으로 '부실 수사'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나 해경 수사관들은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이 수사 공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을 미진한 수사 배경으로 꼽았다.

곽 검사는 "중국이 거의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사에 한계가 분명했다"고 아쉬워했다.

해경 국제협력계장이었던 현 중부지방해경청장 박찬현 치안감도 배진환 당시 외사반장(현 울산해경서장)과 함께 쑤저우 공안국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양국 간 적극적인 공조수사 약속에도 불구하고 전혀 협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중국이 장쟈항에 입항한 산에이-1호 방문 요청을 들어주지 않자 사복 차림에 배를 빌려 타고 해당 선박에 접근, 선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렇게 탐문 수사를 하던 중 중국 공안들로부터 '첩자'로 오인당하고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