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해적사건" 추정 입증 안 돼 장물취득 등만 기소
이동걸 "베니 반이 시켜 알루미늄 처분했을 뿐" 주장

(서울·부산·자카르타·싱가포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한국과 중국의 수사당국은 텐유호의 행방이 전혀 파악되지 않은 기간, 즉 1998년 9월말부터 1999년 10월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주요 피의자인 이동걸이 체포되고 나서도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 단서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관련자들이 함구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한국측 수사기록과 중국측이 2013년에 공개한 '비망록'의 내용을 종합하면, 한·중 양국 수사팀 모두가 텐유호 실종사건이 해적 사건이라는 심증을 품고 있었으나 구체적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 미리 공모한 해적 사건으로 추정

다음 내용은 한국 해경이 한·중 양국의 수사상황을 종합해 내놓은 '텐유호 사건흐름의 추정결론'을 정리한 것이다. 이 추정결론은 한국 해양경찰청이 2000년에 만들었으며 국가기록원을 통해 공개된 '중요사건 수사사례집' 문건에 실려 있다.

이 추정결론에 따르면 텐유호를 겨냥한 범죄 모의는 1998년 8월, 이동걸씨가 사장으로 있던 싱가포르 소재 다야 테크놀로지의 소유주인 베니 반(Benny Ban)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베니 반이 텐유호 실종사건 전에 이미 중국 광둥성 소재 무역업체 '콘스탄트'(Constant of United International Trade Co. Ltd)의 대표 마이클 류(劉宏革·류훙꺼·당시 38세)와 알루미늄 거래를 약속했으며, 이에 따라 베니 반과 이동걸씨가 해적 조직과 끈이 닿는 인도네시아인 '로저'와 '지미 코'(Jimmy Ko) 등과 공모했으리라는 것이다.

해경의 추정결론에 따르면 이들은 해적 모의 과정에서 텐유호에 어떤 화물이 얼마나 실리는지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1998년 9월 20일께부터 이동걸씨와 류씨 명의로 정당한 거래로 위장한 각종 무역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다.

이어 텐유호가 양곤항을 출항한 직후인 9월 27∼28일께, 로저와 지미 코와 연결된 해적단 수십명이 해적선을 타고 총·도끼 등 흉기로 무장해 텐유호를 습격했다.

배에 혈흔과 파손 흔적이 남은 점으로 미뤄, 해적들이 선실을 지렛대와 도끼 등으로 부수고 선원들을 폭행·협박해 감금했으리라는 게 해경의 추정이었다.

다만 해경은 텐유호 선원들의 생사나 행방에 대해서는 별다른 추정을 내놓지 못했다. 선원들을 구명정에 승선시켜 표류토록 내버려 뒀을 수도 있고, 다른 선박을 이용해 제3국으로 납치했을 수도 있고, 아예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텐유호 강탈을 완료한 로저 등은 이 소식을 베니 반과 이동걸씨에게 통보한 후 1998년 9월 29일께 텐유호의 목적지를 미얀마 양곤항으로 변경했다. 운항은 배 습격에 가담한 해적들 중 13명이 선원으로 역할을 바꿔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텐유호는 양곤으로 가던 해상에서 '비토리아'호로 배 이름이 변조됐으며, 위조된 선박 서류를 바탕으로 양곤항에 10월 10일께 입항해 입국수속을 마쳤다.

이어 텐유호는 10월 11일께 양곤항에서 알루미늄괴 3천6톤을 미얀마 교통부 산하 오성해운 소속 사가잉(SAGAING)호에 이적(移積·옮겨서 싣거나 쌓음)했으며, 텐유호 탈취에 가담한 후 배 운항을 맡았던 해적 13명은 위조된 여권을 이용해 인도네시아로 출국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은 이어 인도네시아의 선원소개업자를 통해 선원 16명을 새로 구하고 이들을 10월 21일 양곤항에서 텐유호에 승선시킨 후 다음날 출항해 필리핀으로 향하도록 했다. 선원을 전원 물갈이해 버린 것이다.

이 배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의 여러 항구를 드나들며 이름과 국적을 4차례에 걸쳐 변조해 '알리바이'를 만들었으며, 1998년 12월 하순에 '산에이-1'호라는 이름으로 중국 장자강에서 팜유 3천 톤을 내려놓은 후 출항하려고 하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붙들렸다.

한편 텐유호에 실려 있던 알루미늄괴가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가잉호가 11월 2일 장자강에 입항해 화물을 하역한 점까지는 확인됐으나, 이 때 하역된 화물이 알루미늄괴가 아니었던 점이 확실하다. 알루미늄괴는 그 전에 또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는 얘기다. 시점은 1998년 10월 초순이나 중순께로 추정된다.

이런 '사건흐름의 추정결론' 중 텐유호가 양곤항에 입항한 1998년 10월 11일께 이전에 해당하는 내용, 특히 해적 모의와 강탈에 관한 부분은 당시 수사관들의 심증일 뿐이며, 기소와 재판을 거쳐 입증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부실 수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관련자 함구…국제공조수사 허점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 빚어진 것은 이동걸씨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이 부분에 관해 아예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물취득과 선적변조 이전에 실행된 해적행위를 자백하거나 실종 선원들의 행방을 털어놓을 경우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입장이었다.

사건 관련자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으므로, 체포된 이들만 입을 닫으면 수사기관이 더 추적하기가 불가능하리라는 계산이 깔렸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국가들은 국가 위신과 자국민 보호를 고려해 국제공조수사에 소극적이었으며, 이 탓에 직접적·결정적 단서가 확보되지 않아 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졌다고 해경은 평가했다.

증거가 확실한 장물취득과 선적변조에 관한 내용은 해경의 집요한 추궁 끝에 관련자들이 일부 시인했으나, 그나마도 외국에 있는 다른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걸씨는 알루미늄괴 처분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베니 반의 지시를 받아서 실행했을 뿐이라며 다른 내용은 모른다고 버텼다.

해경은 텐유호가 행방불명이던 기간에 이씨가 미얀마,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을 수시로 드나들었으며 은행계좌에서 알루미늄괴 처분과 관련해 받은 커미션으로 추정되는 돈이 입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는 텐유호에 선적된 알루미늄이 장물인 줄 알면서도 자기가 이 화물의 소유자인 것처럼 자신 명의의 적하목록, 선하증권, 화물이적서 등을 갖고 콘스탄트에 알루미늄을 t당 1천50달러에 매도하는 매매 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문 과정에서 이씨는 베니 반의 지시로 텐유호에 실려 있던 알루미늄 3천t을 필리핀 마닐라에 설립한 유령회사 '삼보 트레이딩'(SAMBO TRADING Co.)을 통해 시가의 3분의 2 수준인 300만 달러에 사들이고 콘스탄트 대표 마이클 류(류훙꺼)에게 넘겼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동걸씨는 오히려 커미션 입금 사실을 근거로 "나는 '심부름값'을 받은 것에 불과하고 매매 대금은 사주(베니 반) 측이 찾아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베니 반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며 텐유호가 실종된 경위나 선원들의 생사는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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