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기관장 부인, 남편 생사 모른 채 올해 1월 위암으로 숨져

(서울·부산·울산·자카르타·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2018년 9월 29일, 오늘은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 등 선원 14명과 한국 조달청이 발주한 알루미늄괴 3천6t을 싣고 인도네시아 쿠알라항을 떠나 인천으로 출발한 파나마 선적 화물선 텐유호가 말라카해협에서 실종된지 꼭 20년째 되는 날이다.

파나마 선적인 이 배는 1998년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해적들에게 강탈돼 두 달 여 자취를 감췄다가, 그 해 12월 중국 장쑤성 장자강(張家港)에 '산에이-1'호로 선명을 바뀌어 있는 상태로 입항한 후 정체가 드러났다. 그 후 중국과 한국 등에서 사건 수사가 일부 이뤄졌으나, 신영주 선장, 박하준 기관장, 중국 국적 선원 12명 등 승선자들의 행방과 생사는 여전히 묘연하다. 해적 강탈, 선상 반란, 또는 사기극 등 설이 분분한 사건의 실체도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기자는 5개월간의 취재 과정에서 박하준 기관장의 부인 고 김매자 씨가 올해 1월 위암 재발로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다. 박 기관장과 김씨의 장녀인 박은정(37) 씨는 7월 12일 울산의 집 근처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 "어머니는 10여년간 아빠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결국 포기했다"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셨지만 자식들 앞에서는 내색을 안하고 홀로 냉가슴을 앓다가 6년 전에 위암 선고를 받으셨다"라고 말했다.

국가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재외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과연 국가가 '최소한의 몫'을 했는지에 의문이 들었다.

기자는 당시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미얀마, 필리핀, 일본 등 사건에 직접 관련된 국가에 주재하고 있던 우리나라 공관들이 당시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려고 힘썼다. 또 남편과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진정과 탄원에 우리 정부의 관련 부서들이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도 살펴 봤다.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은 있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텐유호 사건 당시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 치안관이었던 조민오 전 총경(당시 경정)과 해양경찰청 수사과 소속 경사로 일하며 이동걸 등 피의자들을 조사한 조철제 전 경감(당시 경사)은 이번 사건의 실체와 실종자들의 행방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우리 정부의 국제공조 역량 부족으로 유야무야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총경은 지난주 기자와 통화하면서 "그 때만해도 국제공조 경험이 적은데다 싱가포르 등 각국이 국익 중심의 사고로 인해 베니 반의 범법관련 자료 제공을 꺼리는 등 공조 기피 현상이 만연했다"고 설명했다.

조 전 경감은 7월 11일 부산의 한 식당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국제공조와 관련해 우리 역량이나 교섭 기술 부족, 박약한 실천 의지 등은 따지지 않고 상호주의만 내세우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외국민이 20년 전보다도 훨씬 많은 지금 제2의 텐유호 사건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며 검찰과 경찰이 관련국 협의기관들과의 교류 증진 등을 통해 공조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20년 묵은 사건을 파헤쳐 재조명해보려는 노력 자체를 평가해주는 시각도 없지 않았지만, 기자의 역량 부족과 인력, 시간 불충분, 주요 관련국들의 정보 제공 기피 등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데는 크게 미흡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기록 등 사건 관련 자료와 관계자 증언 등이 이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매체나 정부 부서 등의 노력에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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