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남편·동생 잃은 비운의 여인…정조 왕으로 만든 불굴의 모친
"비인간적 '혜경궁 김씨' 계정과 달라…역사 속 인물해석 오류 우려"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아홉 살이란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돼 열 살부터 궁생활을 시작한 조선시대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1735∼1815).

그는 일찍이 장남(의소세손)을 먼저 떠나보내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남편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본 것은 물론, 혈육인 남동생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당파싸움에 휘말리는 건 기본이고 한때는 궁에서 내쳐지기까지 했다.

둘째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 뒤에야 혜경궁이란 궁호를 얻게 된 그는 남편의 무덤을 30여년 만에 찾아가 볼 수 있게 되는 등 모질고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런 자신의 굴곡진 삶을 '한중록(閑中錄)'이라는 회고집에 담아내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아들을 왕으로 만들어 낸 불굴의 모친 혜경궁 홍씨가 난데없이 200여년 만에 현대 정치판에 '강제소환'됐다.

그것도 그와 남편이 합장된 융릉이 있는 경기도가 주무대가 되고 있으니 역사의 얄궂음이 더하다.

혜경궁 홍씨의 불명예 소환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지하는 글을 주로 남기던 트위터 계정 '정의를 위하여(@08__hkkim)'를 일부 네티즌이 '혜경궁 김씨'로 부르면서 시작됐다.

이 지사를 지지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자들엔 거침없는 말 폭탄을 던지는 이 계정 주인이 다름아닌 이 지사 부인인 김혜경씨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김씨의 이름과 같은 '혜경궁'을 가져다 쓴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이 계정이 "노무현시체 뺏기지 않으려는 눈물…가상합니다", "니 가족이 꼭 제2의 세월호 타서 유족 되길 학수고대할게∼" 등 패륜적 막말을 쏟아내 마치 역사적 실존인물인 '혜경궁'이 비인격적이고 비이성적인 인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네티즌수사대의 '작명'은 기발하기는 했으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실존인물이었던 '혜경궁'에 또하나의 한(恨)을 보태는 결과가 된 셈이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 대학 교수는 "(혜경궁 김씨 논란을 지켜보고 있다면) 혜경궁 홍씨 입장에선 기가 막힐 것"이라며 "그는 정치적인 여인이기도 하지만 불행한 여인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혜경궁 김씨 계정은 노 전 대통령을 욕하고 세월호를 비하하고 있는데 이는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 내용"이라며 "혜경궁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식 사랑이 넘쳤으며 훌륭한 교육으로 정조를 왕으로 만들어낸 어머니였다"고 평가했다.

또 "시아버지와 남편, 친정을 조율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수원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행사에서 혜경궁 홍씨 대역을 맡았다는 한 시민도 "혜경궁 마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칫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 봐 걱정된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그런 부분 때문에 마음이 참 아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혜경궁 김씨 사례처럼) 잘못된 언어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역사 속 인물을 오해하거나 잘못 평가하게 할 수 있다"며 "신중한 인터넷 언어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혜경씨의 남편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경찰간 자욱한 진술공방의 포연에 갇힌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논란이 하루라도 빨리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야할 이유다. 현재진행형으로 작성되고 있는 지금의 역사뿐아니라 조선의 역사를 위해서도 그렇다.

young8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