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젤리제 거리 시위서 "마크롱 퇴진", "부유세 되돌려 놔라"
"마크롱, 다음주 발표 때 우리에게 많은 양보 해야할 것"
지난주보다는 과격양상 줄어…루브르·오르세 문 닫은 센 강변 '한산'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노란 조끼' 집회가 한창인 8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최대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

진압장구와 헬멧, 방독면으로 중무장한 프랑스의 시위진압 경찰 CRS의 대원들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압박하자 '노란 조끼'를 입고 복면을 한 남자들이 바닥에 떨어진 최루탄을 집어 들어 경찰 쪽으로 던진다.

성탄절 시즌을 맞아 가로수에 장식된 붉은 조명이 영롱하게 빛났지만,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와 연기, 고함이 뒤섞인 이 곳에서 '낭만의 도시' 파리의 크리스마스 기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평소 고급 의류와 장신구를 진열했던 상점들은 모두 문을 굳게 걸어 잠갔고, 시위 격화에 대비해 진열창은 하루 전 이미 두꺼운 철문이나 합판으로 덧대어진 상태.

프랑스의 대규모 '노란 조끼'(Gilets Jaunes) 4회차 집회가 전국에서 열린 이 날 샹젤리제의 시위 현장에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현장에는 노란색 형광 조끼 뒤에 '마크롱 퇴진' '로스차일드 물러가라' 등의 문구를 적은 사람과, 가방에는 '부유세부터 되돌려 놓아라'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 이들이 눈에 띄었다. '로스차일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과거 일했던 투자은행이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몸에 두른 사람들은 "부자들의 대통령 마크롱은 필요 없다", "최저임금을 올려라"라고 외치거나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했다.

이날 파리의 시위 현장에는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다. 시내 곳곳에서 마크롱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욕을 하는 낙서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시위를 앞두고 유류세 인상 철회 등 여론 진정책을 다수 발표했지만, 대통령의 직접적인 대국민 메시지는 아직 없다.

노란 조끼 국면에서 정부의 '얼굴' 역할을 하는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아닌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와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이다. 마크롱은 이날 시위 국면이 지나가고 내주 초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경찰과 시위대가 곳곳에서 충돌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파리의 집회는 지난주보다는 과격 양상이 크게 줄었다.

경찰은 지난 1일 시위에서 시위대의 '기동력'에 끌려다니던 무력한 모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았다.

이날 집회가 '노란 조끼'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 당국은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개선문과 콩코르드 광장 사이를 대거 장갑차와 승합차, 안전펜스 등으로 촘촘하게 포위했고, 시위대의 동선은 크게 제약됐다.

샹젤리제 거리는 물론 바스티유, 오페라 등 주요 도심에서 경찰은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쌓거나 불을 지를 도구로 사용할 만한 쓰레기통 등을 사전에 치워버렸고, 방화 표적이 될만한 차량도 대부분 대피시켰다.

극우·극좌단체가 시민들 사이에 끼어들어 폭력시위를 선동할 것이라는 첩보에 경찰은 이른 아침부터 파리 주요 역 앞과 샹젤리제 거리로 통하는 길목에서 시민들을 일일이 검문·검색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 도보로 현장을 다닌 기자도 경찰의 요구에 수차례 가방을 열어야 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 위해를 가할 만한 물품을 소지한 이들 650여 명이 파리 일대 경찰서에 구금됐다.

폭력양상이 줄었다고는 해도 차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다쳤다.

샹젤리제 거리와 쿠르셀 가(街) 등에서 시위대가 투척한 화염병에 승용차와 오토바이들이 불탔고, 오후 6시 30분 현재까지 파리에서만 55명(경찰관 3명 포함)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와인으로 유명한 부유한 도시 보르도에서도 시위대 1명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기자는 샹젤리제의 동쪽 끝인 콩코르드 광장 쪽에서 센 강변의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요 미술관들은 이날 모두 문을 닫았고, 리볼리 가 등 센 강변 주요 도로도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돼 평소의 시끌벅적한 파리와 크게 다른 분위기였다.

관광객이 크게 줄긴 했지만, 멀리서 최루탄을 쏘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는 와중에도 여행자들은 강변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스름 녘의 야경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정상 영업을 하며 테라스에서 음료를 파는 카페들도 눈에 띄었고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과 관광객이 한 데 뒤섞여 커피를 마셨다.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란 조끼' 시민들이 토론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장마르크'라는 이름의 60대 남성은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당연하다"면서 "그는 서민을 위한 정책보다 부유층을 위하는 일을 먼저 했다. 다음 주에 대국민 발표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아주 많은 양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여성은 "퇴진까지 바라진 않는다. 그래도 그가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굳게 문을 닫은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면서는 30대로 보이는 '노란 조끼' 남성과 코트에 정장을 차려입은 한 노신사가 언쟁하는 것이 보였다.

노신사가 "노란 조끼가 뭔데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냐"고 하자 남자는 "사는 게 쉽지 않은 우리지만, 폭력을 일삼는 부류와 다르다. 그냥 가시라"고 대꾸했다. 노인은 더 얘기하기 싫다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