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고심 중인 재계에 '비주류·다양성 인정' 각성효과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포용적 리더십이 사회 양극화로 곤경에 처한 국내 재계에 잔잔한 파장을 주고 있다.

국내 축구계에서 사실상 '비주류'였던 박 감독이 말도 잘 통하지 않은 선수들을 아들처럼 챙기며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게 만든 특유의 리더십이 재계를 향한 우리 사회의 요구와 맞물리며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박항서 열풍'의 배경에는 소탈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그간 성적이 저조했던 '비주류' 선수들을 성심으로 이끌어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는 데 있다. 이런 '박항서 리더십'은 재계에도 적잖은 울림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충현 대한상공회의소 베트남 사무소장은 1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박 감독은 냉철한 용장보다는 푸근한 덕장이며, 비주류 인력이라도 어느 위치에 필요한지를 고민했던 지장(智將)"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의 스타 플레이어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99%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축구든 기업이든 마찬가지"라며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박항서 리더십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리더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국내에서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통해 재차 비정규직 문제와 원·하청 간 갑을 구조가 부각된 점도 박 감독이 추구한 소통과 포용의 가치를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박주근 대표는 통화에서 "축구에서 감독이 11명의 다양한 선수들 사이에 최적의 하모니를 찾아 조직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계에서도 변화무쌍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하나의 하모니로 이끌 수 있는 박항서식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박 감독 역시 국내 축구계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가 60세에 가까운 나이에 베트남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늦깎이 성공을 거둔 점도, 취업이나 승진 측면에서 장년층 소외현상이 만연한 한국에 각성효과를 준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을 '대기업 역할론'으로 연결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재도 대기업이 중소협력사를 지원하기 위해 상생 펀드를 조성하거나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하고, 그룹의 사내외 시설·프로그램을 협력사와 공유하는 정책 등을 펼치고 있지만 상생 협력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간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통화에서 "협력사뿐만 아니라 인재의 저변을 확대하는 차원에서라도, 대기업들이 잘하는 사람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도 함께 끌고 올라가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올리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계 열풍에서 재계가 교훈을 찾으려는 현재의 '박항서 신드롬'은 과거 2002년 '히딩크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재계는 히딩크의 리더십을 경영에 적용해야 한다며 상당수 대기업과 경제연구소에서 히딩크식 경영 이론을 쏟아냈었다.

다만 두 사람의 리더십은 결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

당시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철저한 능력 위주 인재 선발이나 과학적 경기 분석과 같은 이성적 리더십에 재계가 자극을 받았던 반면, 박 감독 리더십은 양극화와 약자 차별과 같은 노동계 소외문제로 갈등이 극심한 재계에 정서적 울림을 주는 측면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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