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오늘부터 골프룰이 바뀌었다. 골프룰은 해마다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이번 개정은 골프의 근간을 흔들만큼 규모가 크다.

이번 골프룰 개정은 골프 경기를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쉽게 만들려는 게 핵심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개정된 골프룰 상당수는 경기 속도를 향상시키며 골프를 더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플레이 속도 촉진은 모든 현대 스포츠의 공통 과제다.

야구, 축구, 농구 등 인기 스포츠는 십수 년 전부터 플레이 속도 높이기에 골몰해왔다. 경기가 늘어지면 곧바로 TV 채널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프로 골프 경기는 최근 5시간 생중계는 기본이다. 10시간 연속 생중계 대회도 있다. 시청자가 지루하다고 느낄 장면을 최대한 없애자는 복안이 숨어 있다.

5분에서 3분으로 줄어든 분실구 수색 시간이 대표적이다. 40초 이내에 샷을 마치도록 규칙을 새로 만든 것도 플레이 속도를 빠르게 하려는 의도다.

반드시 홀에서 먼 선수가 먼저 플레이하도록 한 규정 대신 준비가 된 선수가 먼저 샷을 하도록 허용한 이른바 '레디 골프'의 권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린에서 깃대를 뽑지 않고도 퍼트할 수 있도록 한 규칙 역시 경기 속도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에서 선수 대신 캐디가 마크하고 볼을 집어 올리게 허용한 것이나 선수가 샷 하기 전에 캐디가 뒤에서 정열 상태를 봐주지 못하도록 한 룰 역시 경기 속도를 끌어 올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벌타의 완화를 비롯한 룰 단순화는 '골프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스포츠'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골프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룰을 수 세기 동안 고수하는 '고리타분한 경기'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젊은 세대는 골프에 거부감을 느꼈다는 게 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대대적인 골프룰 개정에 나선 이유다.

더구나 수많은 벌타 조항은 때로는 불합리하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최진하 위원장은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나 거리감을 없애려고 규칙을 크게 손을 봤다고 보면 맞다"고 설명했다.

스윙 도중 한 번 더 클럽에 볼이 접촉하는 이른바 '투터치'나 볼을 찾거나 확인하는 과정, 또는 그린 위에서 우연히 볼이 움직인 경우 벌타를 없앴다.

선수가 친 볼이 자신의 몸, 캐디, 또는 소지품에 맞으면 2벌타를 부과하던 규정도 사라졌다.

벙커를 제외한 해저드 구역에서는 클럽이 지면이나 물에 닿아도 벌타를 받지 않는 것도 골퍼에게는 환영받을 일이다.

손상된 클럽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규정도 폐지됐다. 홧김에 퍼터를 내동댕이쳤다가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끝까지 퍼터없이 경기를 하는 광경은 더는 보지 않게 됐다.

이런 벌타 규정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거나 "나쁜 의도가 아닌 그저 사소한 실수일 뿐인데 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불만을 샀던 터라 대체로 환영받는다.

하지만 경기 속도 향상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진하 위원장은 "기껏해야 10분 정도 경기 시각 단축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플레이 속도 향상은 룰 개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5일(한국시간) 개막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는 룰 개정의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로 주목받게 됐다.

바뀐 룰의 적용을 받는 첫 번째 투어 대회이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팬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생소한 광경을 마주치게 된다.

아마 깃대를 뽑지 않고 퍼트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20m가 넘는 먼 거리 퍼트는 대부분 깃대를 놔둔 채 퍼트할 가능성이 크다.

그린에서 캐디가 볼을 집어 올리는 장면도 적지 않게 등장할 전망이다. 선수가 볼을 집어 캐디에게 휙 던져 주는 모습은 전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해저드에 빠지거나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선 드롭할 때 선수들이 자세 변화도 볼만할 것이다.

꼿꼿이 선 채 어깨높이로 팔을 들어 올려서 볼을 떨구던 선수들은 이 대회부터는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여 공이 떨어질 지점을 살피며 무릎 높이에서 볼을 내려놓게 된다.

다만, OB를 낸 선수가 볼이 사라진 지점까지 걸어 나가서 2벌타를 받고 치는 모습은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때 '한국식 관행이 정식 규칙이 됐다'는 오해를 받았던 이 규정은 프로 대회를 포함한 '엘리트 골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속칭 '양파 OK'라는 최다 타수 제한 규정 역시 프로 대회에서는 볼 수 없다.

전례 없는 규모로 바뀐 골프룰은 PGA투어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를 신호탄으로 줄줄이 열리는 각국 프로골프투어에서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바뀐 골프룰을 통해 경기를 관전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지민기 경기위원은 "룰 개정의 순기능과 부작용을 확인하려면 1년가량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