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 눌러도 '묵묵부답'…창문도 굳게 닫혀 있어
사진 찍으려 수차례 접근하자 요란한 경보음
인근 주민 "평소에도 대사관답지 않게 조용…왕래 없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3일 오전(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남부의 에우르(EUR) 인근의 한적한 주택가.

조성길 주(駐) 이탈리아 북한 대사 대리가 작년 11월 공관을 떠나 잠적한 후 서방에 망명을 타진했다는 한국발 보도가 현지에도 속속 전해지며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지만, 이곳에 자리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은 이상하리만큼 철저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약 500평은 족히 될 법한 대지에 바닥면적 200평은 될 것처럼 보이는 3층 짜리(다락방 포함) 건물로 이뤄진 북한대사관은 높은 담장이 삥 둘러싸고 있는데다 그나마 사이가 빈 방범 철조망은 덤불이나 나무, 구조물로 가로막혀 있어 좀처럼 내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건물 창문도 방범 철망이 설치돼 있고, 안을 보지 못하도록 커튼이나 불투명한 흰색 셀로판지가 붙어 있어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풍겼다.

로마 주재 대부분의 공관이 베네토 거리 등 시내 중심가 대사관 밀집 지역에 있는 것과는 달리, 동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터라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대사관'이라는 정문에 붙은 작은 현판을 보지 않고서는 이곳이 대사관인지 모를 정도였다.

덤불을 헤치고 내부의 동향을 살폈지만, 창문이 굳게 닫힌 내부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봐도 묵묵부답이었다.

마당에 외교차량 번호판을 단 피아트 승합차 검은색과 흰색, 폴크스바겐 승용차 등 3대의 외교 차량이 주차된 걸로 비춰볼 때 건물 안에 직원들이 있으리라는 짐작이 갔으나 북한 대사관 앞을 한동안 서성여도 안에서는 어떤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대사관 앞을 지나는 동네 주민들만이 목격될 뿐이었다. 이탈리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는 달리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취재 나온 현지 언론도 처음엔 전무했으나, 시간이 좀 지나자 현지 기자들과 외신 기자들이 3∼4명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침 대사관 인근 주택 앞에 주차하고 들어가려는 60대 남성 프랑코 보리 씨에게 북한 대사 대리가 잠적한 뒤 서방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문을 들어봤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금시초문이라면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북한대사관이 4∼5년 전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집기 등을 나르는 장면을 목격했으나, 평소에 외교 공관답지 않게 무척 조용해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사관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3∼4명이 종종 쓰레기를 버리거나 빗자루를 들고 공관 앞길을 청소하기 위해 문 밖으로 나오면 인사를 나누기도 했으나, 이들이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는 탓에 긴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고 전했다.

보리 씨는 공관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주로 차량을 타고 출입해 좀처럼 직접 대면하지 못했고, 공관 직원들의 자녀들로 보이는 아이들은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와의 대화를 끝내고 잠시 후 추가 사진 촬영을 위해 건물 앞으로 접근하자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북한 대사관 건물 안에서 누군가가 기자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물러가라는 경고의 의미로 경보음을 작동시킨 게 확실했다.

옆 건물에서 공사하던 이탈리아 인부가 깜짝 놀라 쳐다보는 눈길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편, 이탈리아 파시즘의 창시자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0년대에 조성한 구역인 EUR 지척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건물이 있는 동네는 1960년대에 조성된 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대사관은 2000년에 처음 이탈리아에 공관을 개설한 이후에는 테르미니 역과 멀지 않은 시내에 대사관을 마련했으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수년 전 이곳으로 이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옛 공관과 마찬가지로 현재 공관도 업무 공관과 공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거주하는 살림집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 "조성길 北대사대리 부부, 작년 11월초 공관 이탈해 잠적" / 연합뉴스 (Yonhapnews) 유튜브로 보기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