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에 올해 결혼까지 '겹경사'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 승급만 남아…"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열 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지만 한 번도 '내일 발레를 하러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항상 빨리 리허설하고 싶고, 춤추고 싶고 그래요. 더 나아지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설렘이 커요."

발레리나 박세은(30)은 어린 시절 별명이 '빡세은'이다. 그만큼 지독한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그는 특유의 집념과 끈기, 근성으로 3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제1무용수(프르미에르 당쇠즈·premiere danseuse) 자리에 올랐다. 작년엔 무용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여성무용수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발레는 매일 날 설레게 한다. 발레는 설렘 그 자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 한국 이미지를 외국에 알린 인물이나 사물에 주는 '2019 한국이미지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9일 강남구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났다.

가냘픈 외모에 조곤조곤한 말투지만, 발레에 대한 이야기는 신중하면서도 분명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작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이후 무용수로서의 삶이 달라진 게 있는지.

▲ 캐스팅이나 배역 등에서 직접적인 변화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감을 되찾는 기회였다. 늘 스스로 춤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더'를 외치는 스타일이다. 저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었다.

-- 어떤 부분 때문에 만족을 못 느끼나.

▲ 제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이상적인 그림이 제 몸으로 구현될 때에만 무대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한 무용수다.

-- 주변 사람들에게 '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연습량이 많다고 하더라.

▲ 파리오페라발레단에 2012년 입단한 이후 한 단계씩 입증과 인정을 받는 과정들을 거쳐야 했다. 기회들을 얻는 과정들이 쉽진 않았다. (박세은은 2013년 '코리페'(군무의 선두·파리오페라발레 무용수를 나누는 다섯 등급 중 네 번째), 2014년 '쉬제'(솔리스트급·세 번째 등급), 2016년 '프르미에르 당쇠즈'로 승급했다.)

-- 스스로가 봐도 '독하다' 싶을 때도 있나.

▲ 작년 '오네긴' 연습 때 갈비뼈 연골이 부러졌는데, 통증을 참고 끝내 무대 위에 올랐던 게 기억난다. 의사에게 엄청 혼나기도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강행했다.

-- 연습하거나 다른 발레 공연을 보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취미도 없다고 들었다. 파리에 산지 수년이 지났지만, 에펠탑에도 못 올라가 봤다고 들었는데.

▲ 최근에 처음으로 올라가 봤다. 6년간 만난 남자친구에게 에펠탑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에펠탑에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프러포즈를 준비했다고 하더라. 결혼은 날짜 정하는 것만 남았는데, 7월 정도를 예상한다. 한국인지만 프랑스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어서 프랑스에서 식을 올릴 것 같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할 건 다하고 있다.(웃음)

-- 발레가 지겨운 적은 없나.

▲ 발레가 재밌으니까 이렇게 매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친구에게 프랑스에서 사 온 화장품을 선물했다. 친구가 '이걸 얼른 써볼 수 있게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기뻐하더라. 내겐 그런 설렘이 매일 있다. 발레를 시작한 열 살 때부터 그런 설렘이 항상 내 안에 살아있다.

-- 무대 위에서 긴장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 원래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하고 제 춤에 확신이 서야 무대로 나가는 편이다. 그래야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마농'이란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몸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서 공연 전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패턴이었다. 그런데 그날 공연에서 내 '최고'를 보여줄 수 있었다. "100%를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오히려 100% 이상을 끌어낸 것 같다. 이래서 발레가 재밌다. 매일 발레로부터 배우는 게 있다.

--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남은 승급은 '에투알'(최고 수석무용수)뿐이다.

▲ 지금까지의 승급은 모두 시험을 통해서 이뤄졌지만 에투알은 발레단에서 지명하는 형식이다. 에투알 승급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의 문제랑은 또 다르다. 운도 따라야 하고 발레단 내 자리도 나야 한다. 다만 저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 에투알이 되고 안 되고보다 충실히 제 춤을 추는 게 중요하다.

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