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 논문 2편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도입함으로써 근대 민주주의를 촉발한 3대 혁명 중 하나다. 자유·평등·박애 3대 정신으로 기억되는 이 혁명은 그러나 사실 깊숙이 들여다보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폭력, 학살, 인민재판 등을 통해 50만 명 넘는 인명이 희생됐고 악명 높은 기요틴(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만 4만 명을 넘었다. 희생자의 다수는 '적'으로 규정됐던 귀족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박애를 부르짖었으나 급진 자코뱅당의 공포 정치 속에 유혈이 낭자했고 나폴레옹의 군사 쿠데타로 혁명은 끝이 났다. 급진 세력은 '왕'을 끌어내렸지만, 나폴레옹은 '황제'가 됐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혁명은 지금도 많은 역사학자가 꾸준히 연구하고 논쟁하고 재평가해 오류를 바로잡는 인류사 대사건으로 남아 있다.

서양의 정통 보수주의(Conservatism)는 이러한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데에서 출발했다.

즉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목도한 야만에 대한 공포로부터 탄생했다. 전통을 유지하되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끊임없이 혁신하고 개혁하자는 게 정통 보수다.

이런 사상적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아일랜드 출신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다. 영미권 보수 정치의 아버지인 셈이다. 30년간 휘그당 하원 의원으로 활약한 그는 말년인 1790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을 써 전해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다.

그러자 영국 출신 미국 문필가 토머스 페인이 이듬해 '인간의 권리'를 써 버크의 주장을 반박했고, 이는 '보수-진보' 논쟁의 원형이 된다.

버크의 말년 저작 중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은 이미 알려졌지만, '신 휘그가 구 휘그에 울리는 호소'와 '궁핍에 관한 소견과 세부 고찰'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었다.

신간 '에드먼드 버크 보수의 품격'(좁쌀한알 펴냄)은 이 두 논문을 처음으로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책이다.

버크가 말하는 보수주의는 신의 뜻에 따른 헌정 체제(당시 입헌군주제)를 바탕으로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필요한 변화를 주의 깊고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겸손하고 신중한 정치적 태도를 뜻한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이 보여준 폭력과 파괴 등 모든 극단주의에 반대하며 중도와 중용을 추구하는 것이 보수주의다.

이런 믿음에 따라 버크에게 민주주의란 무차별적 평등을 추구해 오히려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무분별하고 전체주의적인 사조로 인식됐다.

버크가 내세운 보수주의 전통은 19세기 영국 보수당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독일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서 꽃을 피운다. 사회복지는 진보좌파가 이루는 게 아니라 혁명을 두려워하는 보수우파가 실현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디즈레일리는 노동자에게 선거권을 주고 사회개혁 입법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영국식 복지 시스템을 완성했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혁명 세력을 채찍으로 탄압하면서도 건강보험, 노령 연금, 산업재해 보상금 등을 도입해 현대적 노동·의료 복지의 기틀을 마련했다.

미국의 노예 해방도 대표 보수주의자인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에 의해 이뤄졌다.

정홍섭 옮김. 352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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