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세연 인턴기자 = "현대카드 본사의 화장실을 남녀공용으로 개조하기 위해 2년째 디자인을 연구해 완성단계다"

지난 2017년 11월3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정 부회장은 화장실을 남녀 공용으로 만들면 수용 능력이 올라간다며 공용 화장실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이런 계획은 '직장내 성추행'이나 '몰카(몰래카메라·불법촬영)' 우려와 함께 사내외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 부회장이 올린 사진속 '올 젠더(ALL GENDER) 화장실'이라는 문구를 놓고 '성 중립 화장실을 시도하는 것이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 부회장은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성 중립 이슈가 나왔는데 그런 예민한 문제는 사내의 관심사가 아니"라면서 "부족한 화장실 면적을 더 효율적이고 쾌적하게 배치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해명했다.

◇ 바뀐 현대카드 화장실의 모습은?

2018년 하반기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해 올해 초 일부 층 공사를 끝낸 현대카드 화장실은 어떻게 변했을까. 리모델링 대상이 된 화장실은 직원 등이 출입증을 찍고 본사 내부로 들어갔을 때 사용 가능한 공간. 현대카드측에 한달 전부터 화장실 취재를 요청하기도 했고, 지난달 24일에는 직접 현대카드 여의도 본사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끝내 직접 화장실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현대카드 홍보팀 관계자는 "다른 공간도 아니고 화장실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외부인 출입을 불편해한다"며 "외부에서 우리 회사 화장실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화장실에 관심을 두는지 잘 모르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도대체 어떻게 변했기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화장실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홍보팀을 귀찮게 하며 사실확인을 거친 결과는 이렇다.

현대카드 화장실은 성별 구분 없이 모두가 같은 문으로 들어가기는 한다. 그러나 문을 열면 바로 화장실이 나오는 게 아니라 통로로 이어지고, 통로 한편에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이 있는데, 한쪽은 여자가, 다른 한쪽은 남자가 각각 사용한다. 성별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남녀 화장실을 구분한다.

손 씻는 공간도 남녀 공용은 아니다. 현대카드 홍보팀 관계자는 "남녀가 사용하는 세면대 역시 구분되어있고, 여자 쪽에는 파우더룸이 추가로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문밖에서 보기엔 남녀공용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결국 여자와 남자 화장실이 구분된 형태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내부는 어떻게 변했을까. 현대카드 직원이라고 밝힌 다른 남성은 남자가 사용하는 공간 내부에 대해 "좌변기가 세 개 있고, 남성용 소변기가 하나 있다"며 소변기보다 좌변기가 많다는 점 말고는 다른 남자 화장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여성 사용자는 화장실 공사 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좌변기 바로 옆에 세면대가 함께 설치된 것"이라고 답했다.

모든 화장실이 똑같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현대카드 직원이라고 밝힌 한 사용자는 "세면대가 함께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며 "변기가 있는 칸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다 막혀있어 소음이 걱정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화장실 사용자들은 여자와 남자가 통로를 공유하는 화장실 구조에 대해 큰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다. 다만 세면대를 설치하느라 칸의 평균 넓이가 커진 탓에 칸 수는 줄어서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올 뿐이다.

한편 화장실 공사는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한 직원은 "우리 층은 아직 공사 중이라 새로운 화장실을 써보지 못했다. 순차적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보팀 관계자는 "처음엔 화장실 통로를 공유하는 것이 낯설었는데, 불편하진 않다"며 "그래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서 통로에서 화장실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했고, 사용하는 공간도 더 구분했다"고 말했다.

이걸 '남녀공용'이나 '성 중립' 화장실이라고 볼 수 있을까.

화장실을 사용해본 한 남성은 "엄밀히 말해 (남녀) 공용화장실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로 꾸민 화장실을 성 중립 화장실이라고 보는 의견은 더 드물었다. 현대카드 직원들은 "성 중립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카트 홍보팀 관계자도 "성 중립 화장실이 아니다"라며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는 정태영 부회장의 페이스북 게시글과는 별개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결론은 정 부회장의 포부대로 수용력을 높인 남녀공용 화장실이 만들어지지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성 중립 화장실이 탄생하지도 않았다는 것. 정 부회장이 페이스북에 '올 젠더(ALL GENDER) 화장실' 사진을 올리며 남녀공용 화장실에 관한 구상을 밝혔다가 역풍에 부딪히자 결국 '통로 공유' 화장실을 만드는데 그친 건 아닐까.

◇ 성 중립 화장실이란

정태영 부회장의 당시 페이스북 게시글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성 중립 화장실'은 뭘까? 성 중립 화장실은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이다. '모두의 화장실'로 불리며 미국과 유럽, 호주 등 해외에선 이미 확산하고 있다. 보통의 공중화장실이 남녀로 분리된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성 중립 화장실은 남녀 구분의 벽이 없다. 누구나 하나의 큰 공간으로 이뤄진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 안에 속한 개별 칸에 변기와 세면대, 장애인을 위한 손잡이 등이 모두 갖춰져 남녀든 제3의 성이든 사생활을 보장받아 이용하는 구조다.

이러한 형태의 화장실은 LGBT(게이·레즈비언·양성애자·성전환자), 간성(Intersex), 무성(Asexual) 등 다양한 성을 인정하고 모두가 불편함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나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성 중립 화장실을 도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일부 인권단체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어떤 칸도 남녀의 구별 없이 일반 가정집의 화장실처럼 사용할 수 있을 때 성 중립 화장실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성별의 사람이 어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안전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성 중립 화장실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성 중립 화장실이 자리 잡으려면 성폭력 없는 사회가 먼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ey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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