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마스터플랜 참여한 원로건축가…"의사당 대대적 개보수 불가피"
"여러번 설계변경으로 국적불명 건축돼…가장 큰 걸림돌은 국회 불신"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지금 국회의사당은 손댈 곳이 너무 많아요. 일반에 개방할 수 있는 공간은 최대한 개방해 권위적인 모습을 덜어내고 민의의 전당으로서의 위엄도 살리는 방향으로 개보수를 고민해야 합니다."

원로건축가 김원(76·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은 조만간 발족하는 국회 공간문화 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당초 국회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헌정기념관만 개보수할 계획이었지만, 이왕 예산을 들이기로 한 이상 본격적으로 의사당을 고쳐보기로 하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오는 19일 자문위를 공식 발족할 예정이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 전문가들과 여·야 국회의원 등 총 12명이 일단 합류했다. 자문위는 국회 사무처의 비공식 자문기구로 활동하면서 의사당 개보수 기본구상을 다듬어 국회에 제안할 계획이다.

아이디어 구상차 프랑스 상·하원 의사당을 둘러보기 위해 자비를 들여 출장을 온 김 위원장을 지난 6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에서 만났다.

1960년대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에 참여해 여의도와 국회의사당의 어제와 오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1975년 건축전문지 '공간'에 국회의사당을 "국적 불명의 무대장치"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이래, 의사당의 대대적인 개보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대표작으로는 독립기념관 마스터플랜, 한강성당, 남양주종합촬영소, 국립국악원, 주한러시아대사관, 명동성당 100주년 마스터플랜 등이 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문답.

--지금 국회의사당을 왜 고쳐야 하나. 사실 일반 국민들은 국회의사당이 여의도에 있다는 것만 알뿐 의사당 건물이나 그 주변 환경에 대해 거의 모르는데.

▲지금 의사당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건축이 전혀 아니다. 국민들도 국회의사당을 의원들이 맨날 서로 싸우는 곳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나. 그게 건축 탓만은 아닐지라도 의사당에서 개방할 곳은 개방하고 위엄을 살릴 곳은 살리는 방향의 고민이 필요하다. 국민의 사랑을 받을 만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거다.

지금 국회의사당은 권위만 과도하게 강조하는데 정작 국회의 권위는 별로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 의사당 내외부와 주변 환경을 다 손봐야 한다.

--지금 국회의사당이 왜 사랑받지 못하게 된 건가.

▲원래 이승만 대통령 때 김수근 선생의 안이 국회의사당 현상공모에 당선됐다. 위엄과 카리스마를 갖춘 민의의 전당이자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추진됐는데 당선작을 지으려고 막 실시설계를 준비하는 시점에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흐지부지됐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다시 현상공모를 해서 당선작이 정해졌다. 그런데 진행 과정에서 뒤죽박죽이 됐다. 지금 의사당 지붕의 돔은 원래 설계에 없었는데 당시 정권과 국회의원들이 서양처럼 우리도 돔을 얹어야 한다고 뒤늦게 주장해 설계에 반강제로 반영됐다. 건축가들의 전문성과 권위를 독재정권이 훼손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당시에는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의사당은 어찌 보면 '건축가 없는 건축'(architecture without architect)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개념은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전시 제목이었는데 원래는 건축가가 설계하지 않은 전통적 주거 양식을 뜻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나.

▲여의도 개발 전에 지금 국회 뒤편에 양말산이 있었다. 원래 마스터플랜에는 의사당을 풍수를 고려해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지으려 했는데 이 산을 밀어버렸다. 의사당 뒤 작은 언덕을 되살리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조경도 현재는 소나무만 볼품없게 심어놨다. 이를 전통조경 방식으로 꾸미고 수종도 다양화해서 봄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의사당 앞 공간을 나무들이 건물을 가로막고 있어서 시선을 가리는 것도 문제다.

시민에게 더 개방할 곳들도 찾아보고 있다. 가령, 독일 의사당 건물을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리모델링했는데, 돔을 투명 유리로 복원한 뒤 시민에게 개방해 바깥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는 돔이 있는 옥상에 가보면 사방으로 둘러싸인 난간이 너무 높아서 한강과 여의도를 전혀 볼 수 없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등 환경친화적 개보수도 논의해볼 수 있겠다. 의장 단상이 너무 높아 권위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상·하원 의사당을 둘러보니 어떤가.

▲프랑스 의회는 왕정 시대의 유서 깊은 궁전건물들을 대혁명 이후 혼란기를 거쳐 의사당으로 쓰는 것이라 우리와 사정이 아주 다르다. 그래도 저명한 건축가들이 상시로 참여해 건물을 유지보수하고 세심히 관리하면서 특유의 예술적 전통과 분위기를 지켜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야간에 경관조명으로 건물의 품격을 강조하는 것도 주의 깊게 봤다. 지금 우리 국회의사당의 경관조명은 지나치게 고압적이고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의사당 내부 조명도 너무 기능적인 면에 치우쳐있다. 인위적 연출까지는 아니라도 조명을 바꾸면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

--의사당 개보수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뭔가.

▲국민의 국회에 대한 불신이다. 내가 개보수 얘기를 꺼내면 주변에서도 '사람(국회의원)을 바꿔야지 건물을 바꿔서 되겠냐'는 냉소가 대부분이다. 의사당 개보수는 결국 어느 정도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사업인데 '국회의원들이 또 돈을 들여서 본인들 공간을 치장하느냐'하는 얘기가 분명히 나올 것이다.

국회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의사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이왕 얘기가 나오고 일이 추진된 이상 하는 데까지 해봐야 한다.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