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61)이 미국에서 열린 3개월간의 재판 끝에 유죄평결을 받아 종신형이 확실시되고 있지만 종신형이 과연 그가 저지른 죄악에 비교해 합당한 처벌인지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구스만은 멕시코 교도소에서 두 차례 영화 같은 탈출에 성공하면서 멕시코 당국이 그에 대한 처벌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2017년 1월 미국으로 신병을 인도했다.

멕시코의 경우 현직(당시) 대통령이 뇌물을 받는 등 사실상 구스만의 영향력이 정치, 사회 모든 곳에 미치고 있는 만큼, 구스만의 처벌을 위해서는 미국으로의 인도가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그가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곳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 논평란에서 지적했다.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의 재판은 마약밀매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인 구스만의 미국 내 마약밀매, 운반 등에 치중함으로써 그가 멕시코에서 저지른 살인 등 엄청난 인도적 재앙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단죄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멕시코 정부 관리들은 지난 4일 회견을 통해 주로 마약밀매가 성행하는 지역에서만 4만명이 '사라졌다'면서 수사관들이 1천100개소의 무덤을 발견하고 공공시체안치소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만6천구의 시신이 있다고 밝혔다.

멕시코 정부의 엔치나스 인권부 차관은 "인도적 위기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 영토가 거대한 비밀 무덤으로 변했다"고 통탄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구스만 재판이 140억 달러(약 15조원)에 달하는 구스만 마약 카르텔 내부 메커니즘이나 구스만의 탈옥 스토리, 미인대회 출신 부인 근황, 기발한 마약 운반방법 개발 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가 멕시코에서 지지른 집단 살인 수준의, 멕시코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범죄행각은 외면받았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간 멕시코에서는 20만여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100명 이상의 언론인이 피살됐다. 한 나라 복판에서 백주에 발생한 집단학살(genocide)에 해당하는 수준의 인도적 재앙은 수많은 멕시코의 가정들을 비탄으로 몰아넣었다.

무소불위의 마약밀매 조직 두목이 사법 단죄를 받은 것은 일단 멕시코 내 다른 마약밀매 조직에 경종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구스만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비교하면 그가 미 콜로라도 산악지대 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잘된 것'이라는 혹평이다.

미 검찰이 미국 내 마약밀매에 초점을 맞추면서 구스만의 유죄입증을 위해 수많은 마약밀매조직 범죄자들을 증인으로 포섭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증인 가운데는 심지어 자국 내에서 150건의 살인을 지시했다는 조직 간부도 포함돼 있는데 과연 이러한 명백한 살인 범죄자까지 '사법 협력' 대상으로 끌어들여 추후 감형의 대상이 되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이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멕시코 관리들에 대한 마약밀매조직의 광범위한 뇌물죄도 처벌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핵심 증인들이 모두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법정에서 증거가 제시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1억 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증언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의 경우 '증거 부족'으로 실제 처벌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망했다.

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니에토 전 대통령의 뇌물죄 처벌에 대해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면서 '증거 없이 그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직 대통령들을 조사할 경우 나라를 대립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미국 내 재판에서는 과거 미국 정부가 구스만 카르텔을 지원한 적도 있다는 사실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구스만 카르텔이 경쟁 조직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았다는 공공연한 사실들이 회자해 왔으나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그에 대해 전혀 심리 기회를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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