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처분으로 인정되더라도 공공복리 따져 판결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법원이 14일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원전 지역 주민들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허가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사정판결(事情判決)'을 내리면서 앞서 비슷한 판례가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사정판결이란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행정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면 법원이 청구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행정소송법 제28조 1항에 따른 것이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한국수력원자력에 내준 원전 건설허가 처분은 위법하다면서도 "처분 취소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다"며 사정판결을 했다.

건설허가는 위법했지만 취소할 경우 공공복리를 크게 저해할 수 있으므로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게 판결 취지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내린 처분에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취소는 못 하도록 하는 사정판결은 이례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고 법조계는 설명한다.

그린피스 측 김영희 변호사는 "사정판결은 웬만하면 법원이 해주지 않는, 예외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법원 관계자는 "행정이란 개인 간의 법률관계와 다르게 다수의 공공의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며 "그런 관점을 반영해서 재판하라고 행정소송법에 마련된 특수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사정판결은 과거에 주로 대규모 국책사업의 타당성과 관련한 행정소송에서 종종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시민들로 구성된 '국민소송단'이 낸 낙동강 살리기 사업 취소소송 항소심이다.

2012년 2월 부산고법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할 때는 경제성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생략해 국가재정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보의 설치가 거의 100% 완성됐고, 준설 역시 대부분 구간에서 완료돼 이를 원상회복한다는 조치는 국가재정의 효율성은 물론 기술·환경 침해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공공복리에 반하는 사태 방지를 이유로 사정판결을 했다.

다만 이 판결은 2015년 12월 대법원에서 사업이 모두 적법하다는 1심 취지대로 뒤집혔다.

법원은 로스쿨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조선대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를 상대로 제기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인가처분 취소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도 사정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09년 4월 서울고법은 "피고가 전남대를 인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인가가 취소될 경우 입학생들이 입게 되는 피해 등을 고려해 인가를 취소해달라는 조선대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 수뇌부를 비판한 뒤 면직당한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면직취소청구 소송 1심에서도 사정판결이 내려졌다.

1999년 서울행정법원은 심 전 고검장이 제기한 '면직 부당'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복직할 자리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복직은 불허하는 판결을 했다.

하지만 2000년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위법한 행정처분을 그대로 두는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면직처분 취소 판결을 하더라도 복직할 자리가 없는 점 등이 인정되긴 하지만 그런 사태는 검찰 내부에서 슬기롭게 조정, 극복해야 할 문제일 뿐 이를 이유로 준사법기관인 검사에 대한 위법한 면직처분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bob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