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사령관·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 선임장교 등 4개 겸직
어떤 직책으로 지시하는지 때론 미군도 헷갈려
'美국방장관·합참의장 대리' 역할도…의전도 그때그때 달라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최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주둔 연계' 시사 발언을 했던 로버트 에이브럼스 미 육군 대장은 평소 입이 무겁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친(전 육군참모총장)과 큰형(준장 예편), 작은형(대장 예편)이 모두 장군 출신인 집안 이력으로 '뼛속까지 군인'이란 이미지가 강해서다.

기갑병과 출신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투를 지휘했고, 중장 시절에는 척 헤이글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 밑에서 참모를 했다. 작년에 주한미군사령관 내정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 상대하기 만만찮은 '강성', '강골', '지퍼'(입이 무겁다는 의미) 등으로 입길에 올랐다.

군의 한 관계자는 16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전형적인 야전 지휘관 스타일"이라며 "평소에는 과묵해도, 아니다 싶은 것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군인"이라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주한미군은 평화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주둔할 것이라는 식으로 발언했다는 기사가 나가자 국방부 당국자들은 실제 '발언 원문'을 찾느라 법석을 떨었다.

작년 11월 취임 이후 '정중동'의 행보와 태도로 단 한차례 '설화'도 없었던 탓에 뭔가 의도가 있는 발언 아니냐는 예감 때문이었다. 이 발언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는 등 논란도 제기됐다.

그러자 다음날 미국 국방부가 공식 해명을 해왔다.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 비핵화 대화와 무관하다"며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주한미군의 철수나 감축에 대해 논의하거나, 계획한 바가 없다"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15일 주한미군사령부를 통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동맹 차원의 문제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관계가 없다"라며 자신의 청문회 발언을 사실상 주워 담았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의회 발언에 대해 즉각 해명하는 입장을 낸 것은 근래에 없었다.

이것으로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뒷맛은 썩 개운치 않았다.

이에 군 관계자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평소 성격상 허투루 말할 사람이 아니다"면서 "그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에이브럼스 사령관, 4개 모자에 직책도 4개…한입으로 각각 다른 4개 업무 지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국에서 공식 업무를 볼 때 4개의 직책을 겸임한다. 주한미군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 등이 그가 맡은 직책이다. 그래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해당 직책에 따라 각각 다른 모자를 쓴다. 4개의 모자가 그의 집무실에 항상 준비되어 있다.

군복에 다는 휘장도 4개다. 우리 합참이나 국방부에 들어올 때 어떤 직책으로 오느냐에 따라 휘장은 달라진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입'은 작년 남북 군사합의서 이행 작업이 한창 속도를 낼 때 가장 주목을 받았다.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유엔군사령관으로서 수행했던 업무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남북이 비무장지대(DMZ)내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전술 도로 공사를 하고, GP(감시초소) 시범 철수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를 논의할 때 유엔사가 전면에 나섰다.

현 정전협정은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만 DMZ에 출입할 수 있다. 우리 군인과 정부 관리들이 DMZ로 들어가고, 군사분계선(MDL)을 왕래할 때는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북한으로 통행하는 교통수단도 유엔사 승인 없이는 못 움직이게 되어 있다. 작년 8월 남북의 북측 구간 철도 현지공동조사가 무산된 것만 봐도 유엔사의 '위세'는 아직 건재해 보인다.

당시 유엔사는 열차 연료로 쓰기 위해 경유를 싣고 방북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휘발유·경유·등유를 아우르는 정유제품의 대북 공급량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에 따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돼 있다.

유엔사가 작년 10월 보도자료를 급히 내어 당시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이 "유엔사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을 진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한 발언을 전한 것도 비판 여론을 감지해서다.

작년 11월 적대행위 금지 합의사항이 실행된 후 처음으로 DMZ에 난 산불 진화를 위해 투입된 헬기 2대도 유엔사의 출입 승인을 받아야 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작년 유엔사가 매우 바빴다는 사실을 이번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은연중 과시했다. 미국이 최근 역할을 확대 강화하는 유엔사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청문회에서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지난해 1만3천66건의 휴전선 통과를 승인해 2017년의 5건과 대조를 이뤘다"면서 "JSA에서 오간 공식 메시지는 152건으로 2017년의 56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물론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한미연합군사령관 직책을 맡고 있어 한미 연합방위태세 확립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특히 남북 군사합의서가 본격 이행되면서 한미 연합방위태세 약화를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는 후문이다. 유엔군 사령관으로서의 역할에 맞도록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에 중점을 두면서도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해야 하는 어찌 보면 '시소 게임식'의 업무를 하는 셈이다.

여기에다 주한미군사령관이자 주한미군 선임장교로서 업무도 막중하다. 때론 선임장교로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자격도 부여된다.

그래서 각각 다른 4개의 분야에서 군령·행정권을 행사하고, 한 입으로 4개의 업무를 지시해야 하는 복합적인 처지에 있다. 요즘 주한미군 장병들은 사령관의 지시가 떨어지면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한다. 사령관이 어떤 '직책'으로 지시를 내렸는지 영 분간이 안 갈 때도 있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예비역 장성은 "4개의 직책을 수행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의 임무를 세부적으로 따지다 보면 그 경계를 정확히 가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주한미군사령관, '미 국방장관·합참의장 대리' 업무 수행…의전도 달라져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선임장교로서 미국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의 '대리' 자격으로 우리 군 수뇌부를 만날 때가 많다. 미국은 시간적 또는 물리적으로 자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한국군 수뇌부와 접촉하지 못할 때는 주한미군에서 가장 높은 선임장교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대리 자격을 부여해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그러면 주한미군 사령관은 국방장관 또는 합참의장 대리로 협의 권한을 행사한다. 이런 권한을 부여받으면 군복 상의에 '주한미군 선임장교' 휘장을 달고 협의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사령관에 대한 의전도 달라진다.

우리 국방부 장관은 국방장관 대리 임무를 띠고 국방부 청사를 방문하는 주한미군사령관에 대해서는 응접실 밖에서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합참의장도 미국 합참의장 대리자격으로 합참 청사를 방문하는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동일한 '의전'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의전은 달라지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요즘에는 서로가 그런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