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민주주의 근간' 확인…5·18 정신 헌법전문 반영 약속한 적도
헌법 허용하는 수위 넘었다고 판단…'방어적 민주주의' 정치철학 반영
지역갈등·국민분열 조장도 우려…靑 "역사적·법적 판단 끝나" 논평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이른바 '5·18 망언'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광주 폭동", "5·18 유공자 괴물집단" 같은 해당 망언을 "민주화의 역사와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 등으로 규정했다.

지난 11일 한국당이 추천한 5·18 진상조사위원 2명의 임명을 거부하고 재추천을 요구한 바 있지만, '망언'에 직접적 언급을 한 것은 처음이다.

'역사'와 '헌법 정신'을 앞세운 문 대통령의 날 선 비판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한국민주주의의 근간이 됐다는 확고한 역사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 대통령, '5·18 망언'에 "헌법 부정…나라근간 무너뜨리는 일" / 연합뉴스 (Yonhapnews) 유튜브로 보기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장기독재권력이 붕괴하고 일종의 권력 진공 상태에서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또다시 신군부가 권력 탈취의 마각을 드러내는 데 저항하며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선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뒤따랐고 여기서 싹튼 불씨가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한국의 현대 자유민주 헌정질서가 이뤄졌다는 판단인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도 불리며 열리는 듯 했던 민주화 공간은 당시 신군부의 총칼과 군홧발에 무참하게 짓밟혔지만, 이들에 맞선 5·18 저항 같은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꽃 피울 수 있었고 그 연장선에 문재인정부도 자리한다는 생각인 셈이다.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대선 당시 개헌을 공약하며 새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결국 문 대통령으로서는 5·18 정신을 왜곡하는 것은 곧 한국민주주의 체제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주장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그동안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집권 첫 해인 2017년 5·18 기념식 때에는 유가족의 추모사에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문 대통령 자신도 1980년 5월17일 서울역 앞 시위에서 발생한 경찰 사망사건 참고인으로 유치장에 구속 수감된 적이 있다. 20∼30일 후 풀려나기는 했으나, 당시 경험으로 미뤄 문 대통령이 광주에서의 희생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망언' 논란 직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자유한국당 일부에서 논란이 된 의원들의 징계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 등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와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거나 침해하는 주장과 행동에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폐절하거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와 사상 등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정치철학에 맥이 닿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망언은 헌법에서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 있다는 생각도 이번 발언의 배경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1일 한국당이 추천한 5·18 진상조사위원 2명에 대해 국회에 재추천을 요구하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역사적, 법적인 판단이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지역갈등을 부추기며 국민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은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색깔론과 지역주의로 편을 가르고 혐오를 불러일으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행태에 대해 국민들께서 단호하게 거부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가진 역사인식이 자칫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문 대통령의 경계심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열린 7대 종단 지도자들과 오찬에서도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제일 필요한 게 국민통합"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내부가 한마음이 된다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돌파해 나가면서 같이 감당하면 되는데 남쪽 내부에 남남갈등이 있으니 쉽지 않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도 국민분열이 가장 우려된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으로 여당은 한국당을 겨냥한 공세에 한층 힘을 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당의 반발도 거세지며 정국은 더 경색될 전망이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한국당의 입장을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역사 왜곡 세력 프레임을 씌우는데, 그 정점에 청와대가 있다"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7일에도 기자들을 만나 청와대가 5·18 진상조사위원 2명의 재추천을 요구한 데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면서 "(기존 위원들을) 다시 추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취재진을 만나 "아침에 나 원내대표가 (위원들 경력을 추가해) 다시 추천하겠다고 얘기하더라"라며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재추천 서류가 오지는 않았다. 국회의장과 국방부를 거쳐 제출돼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hy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