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당국자 "모든 WMD·미사일 동결" 언급…'동결로 후퇴' 논란 소지
美 '신속하고 큰 성과' 필요성 함께 강조…'동결→폐기' 단계접근 분석도
美, 北 '완전한 비핵화' 의지 확신못하는 듯…'비핵화 개념' 이견해소도 의제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실무협상이 개시된 와중에 미국 고위당국자가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불쑥 언급했다.

이는 핵무기를 포함한 WMD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이 북미 실무협상 테이블에 오른 주요의제의 하나일 가능성을 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북미 실무협상 내용에 정통한 미 고위당국자는 21일(현지시간) 기자들과의 전화브리핑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지난달 말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제시된 우선순위 일부로 관심을 돌리고 싶다"면서 미국이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협상 의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비핵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유된 이해의 진전'과 '모든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동결', '최종적으로 로드맵을 향한 협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모든 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동결'(a freeze on all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missile programs)이다.

이는 비건 대표의 지난달 말 스탠퍼드대 연설 내용을 환기하면서 나왔지만, 당시 비건 대표의 연설에는 동결에 대한 언급이 따로 없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북미의 우선순위 의제에 '동결'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하노이 실무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북미 협상 사정을 잘 아는 미 고위 당국자의 입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동결' 발언이 나오면서 협상 추진경과와의 관련성에 관심이 집중된다.

문제는 그동안 '영변핵시설 폐기+α'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의 핵심 관전 포인트로 부각된 상황에서 느닷없이 동결이 거론된 점이다.

만일 '폐기'가 아니라 '동결'이 북미의 중점 논의사항이라면 이는 이번 협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자칫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과 함께 정상회담의 성과를 놓고 의구심과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로서는 이 당국자가 거론한 동결이 어떤 맥락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해보인다. 특히 비건 대표가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해 10월 4차 방북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어, 동결 자체를 합의의 목표로 삼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의 복잡성 등을 감안해 '동결→폐기'의 단계적 수순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와 관련, 비건 대표는 북핵 실무협상을 준비하면서 전문가 집단의 조언을 청취했고, 이중 '카네기팀'으로 불리는 집단이 비핵화에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선 북한의 핵무기를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동결하는 개념의 'CVC'(Comprehensive Verifiable Capping) 전략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최종 목표에 한번에 다다를 수 없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동결 전략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동시적 접근'에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장기전'을 잇따라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이나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미 단계적 접근 기조로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와 같은 전통적 방식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큰 틀에서 패키지로 묶는 단계적 로드맵을 그리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전화브리핑에서도 기존 북핵협상 전략에 단계적 성격을 상당히 가미한 듯한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 당국자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에 대해 지금 당장 확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인 것'으로 표현했다. 핵신고에 대해서도 "비핵화의 과정을 완료하기 위해 결국은 완전한(full) 신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 비핵화 완료 시점에 핵신고가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이 당국자가 '모든' WMD 프로그램의 중단을 언급한 것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는 '+α'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핵'을 상징하는 영변 핵시설은 물론이고 영변 이외에 가동되고 있을 지 모를 '미래 핵'의 생산을 중단하고 궁극적 폐기 수순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 고위 당국자가 이날 전화브리핑에서 북미가 신속하고 큼직하게(very big bites) 움직일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팀에 할 수 있는대로 멀리 갈 것을 독려하고 있다"는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당국자가 WMD과 함께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언급한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특별히 중요한 대목이다. 미국이 북한으로터 느끼는 최대 위협은 핵을 탑재한 ICBM이 본토로 날아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과'를 중시하고 이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핵과 함께 미사일 발사실험의 중단을 '공식적으로' 인증받고 싶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기회있을 때마다 '위협 감소'를 우선적으로 강조해왔다.

이렇게 볼 때 당국자가 언급한 '모든 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동결'이 실무협상에서 의미있게 논의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대북 협상 회의론이 팽배한 현 시점에서 '동결'을 꺼낸 것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FFVD와 같은 '완전한 비핵화' 목표는 뒤로 미루고 '핵과 미사일의 동결'이라는 손쉬운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에 맞춰 '패키지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울 소지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폐기에 대한 구체적 확약없이 동결에 그치는 인상을 줄 경우 회담 성과를 두고 거센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 정치권 안팎에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의 범위에 대한 회의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미국이 핵폐기보다 ICBM 위협 제거 등 동결로 목표를 낮춰 잡으며 '스몰딜'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곳곳에서 제기돼 왔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동결' 발언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최종 담판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계속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큰 틀의 합의만 이뤘을 뿐 구체적 합의가 없다고 비판받았던 1차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2차 회담에서도 비핵화 합의가 동결에 초점이 맞춰질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외교는 물론 북한의 비핵화 의지 역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북한과 미국이 아직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정의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비핵화 결정을 내린 건지 아직 모르겠다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협상팀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북미 간 비핵화 개념 정의의 이견 좁히기 역시 실무협상의 주된 의제임을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나름의 비핵화 정의를 제시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도 협상 중이라는 이유로 북한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비핵화의 개념에 양측이 아직 '공유된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1차 정상회담이 선언적 합의에 머물렀음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워싱턴 조야에 퍼져있는 대북협상 회의론을 더욱 부추기는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