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운동본부장 맡고 있는 박상인 서울대 교수 인터뷰
"재벌 중심의 경제, 경쟁과 혁신 막아 제조업 위기 초래"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2∼3년 전부터 재벌 체제로 인해 제조업에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약속했던 재벌개혁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재벌개혁운동본부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우리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면서 이같이 진단했다.

재벌 중심의 경제는 경쟁 기회와 혁신 유인이 적은 구조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가 줄어들고 기술 탈취도 빈번히 일어나 제조업의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 부족에서 찾으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6년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저서로 한국사회에 충격적 화두를 던진 그는 이듬해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라는 책을 통해 재벌 중심의 이른바 '박정희 개발 체제'는 효과를 다했기 때문에 '사회통합적 혁신형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이런 측면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게이트'가 터지면서 변화에 대한 국민 욕구가 굉장히 높아졌고, 정부는 이러한 모멘텀을 가지고 개혁할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정부 의지가 약했고, 나아가 친재벌적이었다이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에 약속했던 재벌개혁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2년은 박근혜 정부 2년보다 오히려 더 한 게 없다"고 강한 어조로 힐난했다.

그러면서 최근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해소' 움직임도 박근혜 정부가 과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데 따른 것이어서 문재인 정부가 거둔 성과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정부가 '입법 핑계'를 대면서 적극적으로 재벌개혁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내용인 데다 이를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음에도 국회에만 책임을 돌리며 입법 이외의 방법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전자투표제의 경우 섀도보팅 폐지로 어차피 도입이 불가피하고,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보다 지주사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하는 국내에선 의미 없는 제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집중투표제는 사실상 정부가 뽑는 회장이 이사회 구성을 제멋대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은 의미가 없고, 상장 규칙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합병, 총수 일가 보수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령 금융위원회 권한으로 상장 규칙을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인도에서 상장 규칙 변경을 통해 적용하고 있는 이른바 'MoM룰(Majority of Minority Rule)'을 좋은 사례로 언급했다.

'MoM룰'은 이스라엘이 지난 2012년 처음 회사법에 도입한 제도로, 총수를 제외한 '비지배주주'의 다수결로 의결해야 하는 사항들을 별도로 정해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 등을 차단하는 규칙이다.

'인도의 삼성전자'라고 불릴 정도도 거대 IT 기업이었던 '사티암'의 회계부정 사건이 드러나면서 인도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상장 규칙을 바꿔 'MoM룰'을 도입하면 공정거래위원회 관료들이 퇴임 이후 정경유착에 빠질 일도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국회로 넘어간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터무니없는 구태의연한 법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 30%(상장사), 20%(비상장사)'에서 모두 20%를 일원화하고 이들 기업이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나 이는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재벌 체제로 인한 제조업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며, 3가지 과제를 제안했다.

그는 "가장 먼저 경제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재벌 중심에서 중소·중견 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진화해야 한다. 길게는 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둘째, 셋째 과제를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산업구조조정과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라고 지목한 뒤 "정부는 한계산업을 정리하는 동안 노사가 동등한 희생을 할 수 있도록 신뢰를 줘야 한다"면서 "또한 과감한 재정 운용을 통해 사회안전망 확충과 실업 부조 정책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들 3가지 과제를 실천하지 못하면 재벌들도 생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벌도 정부 주도의 재벌개혁을 활용해 내부적으로 실행하기 힘들었던 개혁들을 시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기술 탈취' 문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가해자의 경제적 능력에 비례하게 배상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출액의 10%' 등 일정 비율로 배상액을 규정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새로운 모멘텀은 정부가 아닌 국민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스티브 잡스'(미국 애플 창업자)를 찾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모멘텀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acui7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