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강조하는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인터뷰
"재벌정책, 잘못 바로잡기와 새로운 협력방안 함께 추진해야"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재벌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더욱 절실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재벌개혁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진영에 따라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 좌우를 넘어선 사회적 경제를 강조하는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재벌 문제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우석훈 박사는 17일 재벌개혁을 주제로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사회와 재벌의 관계 재구성'이란 관점에서 답변을 내놨다. 그는 또 과거 재벌 위주 성장의 한계를 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 '부드러움'을 역설했다.

◇ "'광주형 일자리', 한국 자본주의 다음 단계의 첫 출발"

우석훈 박사는 "지난 10년간 진행된 '자본 대 노동' 논리의 연장선에서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이뤄졌다"며 "성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경제에서 중견·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지분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재벌 쏠림 현상이 커진 상황에서 임금과 기술 혁신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대기업과 사회,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계의 재구성' 해법으로 '광주형 일자리'를 제시하며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에 관한 것으로 사회와 재벌 사이에서 임금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우선 대기업의 임금 한계와 관련해 현대자동차[005380]는 인건비의 생산비 비중이 높아져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고, 기존 노동자는 적용하지 않더라도 결국 신규채용은 광주형 일자리를 보편화해서 전환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지역의 복지혜택이 많은 선진국 노동자는 총소비의 절반 정도가 복지로 해결되는데 한국은 90%를 임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임금 인상이 이뤄졌다며 "이제 버티기 어려울 때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회도 일자리를 위해서 대화할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며 "임금을 줄이더라도 주택을 포함한 통합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도 일정 수준을 갖춰주는 것을 지역사회와 연계한다면 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역시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해도 형식적 일자리라는 한계가 있지만, 광주형 일자리처럼 사회 서비스와 결합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는 "수출 보조금을 다시 살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며 "세계무역기구(WTO)가 연구·개발(R&D) 지원도 공공기술 문제로 지적하는데 임금으로 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하우징 등 사회적 비용을 지자체를 통해 준다면 복지이자 지역경제 사업이 된다. WTO는 지역경제 지원을 포괄적으로 허용하고 있어 문제 될 게 없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대선 과정은 청산 국면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대타협 논의가 내세워지지 않았다며 "그러나 사회와 대기업 사이의 '관계의 재구성'이란 것은 이제 경제적 이유로 필요한 상황이 됐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요 제조업체가 고용을 늘리고 임금이 기존 노동자보다 낮아도 실질적 생활 수준이 내려가지 않도록 중앙과 지방정부가 복지에 최선을 다한다면 과거의 토건을 통한 균형 발전이 아니라 일자리를 통한 균형 발전"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이 사회적 기여를 체계화하고 사회적 책임, 직장 민주주의 등을 선언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논의 방향이 "더 부드럽지만, 더 길게 갈 수 있는 것"이라며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와 현대차로만 좁게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가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첫 출발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재벌도 자율적으로 변모해야"

우석훈 박사는 광주형 일자리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재벌정책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과 함께 이런 대안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도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모든 모델이 가능하다"라며 다른 업종으로의 확산에 대해서도 "자동차업계의 과점화 과정에서 생긴 건데 사실 제조업 다수가 과점 시장이라서 적용될 여지가 많다"고 했다.

다만 임금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복지를 확충해 일자리는 늘리는 것까지는 가능성이 크지만, 혁신이나 생산성 확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우석훈 박사는 경제민주화의 재벌개혁과 관련한 지금까지 논의는 "나쁜 짓 못 하게 하자"였는데 경영권 승계 때 일감 몰아주기나 업적 몰아주기를 통한 초고속 승진 등등 잘못된 관행은 여전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나쁜 짓을 하지 말자'가 재벌과 한국사회의 관계에 전부는 아니다. 경제 주체이고 생산 주체인데 바뀌는 상황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타협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라며 "경제민주화로 논의했던 많은 제도와 장치가 사실 잘 이행이 안 됐는데, 그 이행과 동시에 미래의 한국경제 그림들을 새롭게 논의할 테이블이 필요하다. 이행이 잘 됐으면 미래 논의로 쉽게 넘어갔을 수 있겠지만, 잘못된 게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지원하자고 누구도 편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재벌개혁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협력방안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런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시기는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기 전"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한진가(家) 갑질 사태를 예로 들며 촛불 정국 이후 국민의 재벌에 대한 수용성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재벌도 바뀐 여건에 맞춰 자율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을 과거처럼 관리하면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생겨서 상법을 고쳐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감사위원회도 만들었는데, 부작용이 생겼다. 사외이사는 헐값에 로비할 수 있는 공식 로비 창구가 됐고, 감사위원장은 대개 사외이사가 맡아 내부 견제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재벌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에 대해서는 "상속 자본주의는 21세기의 질문"이라며 토마 피케티를 인용하면서 한국처럼 대놓고 3세 경영하는 사례는 외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갈라파고스처럼 됐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그는 1990년대 세계화,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국가의 의미는 줄어들고 시장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국가가 어떤 체계를 갖추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과가 달라졌다며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화 이후에도 여전히 국가가 어떤 정책을 쓰느냐가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더 강화된 측면도 있다"고도 했다.

우 박사는 혁신성장 정책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팹랩(fablab·fabrication laboratory)'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기술이 결합하면서 혁신이 나왔는데,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팹랩은 없어지고 규제 완화만 남았다"라고 지적했다.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