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출신 네 아들의 아빠, 카드단말기·빈 소총 집어던져 테러범 쫓아내
파키스탄 父子, 테러범 붙잡아 넘어뜨리려다 안타까운 희생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나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 목숨을 내줄 준비가 돼 있었다."

무려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총격 테러 현장에서 테러범과 맞섰던 압둘 아지즈(48)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참혹했던 뉴질랜드 총격 테러 현장에서는 아지즈처럼 반자동 소총을 난사하는 테러범에 맨몸으로 맞선 영웅들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외신들이 17일 보도했다.

지난 15일 테러 용의자 브렌턴 태런트(28)가 크라이스트처치의 린우드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총격을 시작했을 때 아지즈는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예배 중이었다.

태런트는 인근 알누르 모스크와 거리에서 먼저 수십 명을 해친 뒤 이곳까지 왔다.

처음에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는 줄 알았던 아지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무기 대용으로 집어들고 사원 밖으로 달려나갔다.

건물 밖에는 군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총기로 무장한 한 남성이 있었다.

아지즈는 AFP와 로이터 통신에 "처음엔 그가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며 "내게 욕을 하는 것을 듣고 그가 착한 사람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모스크를 공격하러 온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자 아지즈는 곧바로 이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테러범이 자신의 차로 뛰어가 다른 총을 꺼내자, 아지즈는 카드단말기를 힘껏 집어던지며 그와 맞섰다. 이어 주차된 차들 사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총알을 피했다.

목숨을 걸고 테러범과 맞선 그를 향해 아들 중 한 명이 "아빠, 제발 안으로 들어오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테러범이 버린 산탄총을 발견했다. 방아쇠를 당겼지만 빈 총이었다.

아지즈는 아들들과 다른 참배객을 보호하기 위해 "이리와, 이리와"라고 소리치며 테러범의 관심을 끌었다.

인터뷰에서 아지즈는 "범인이 단지 내게 집중하기를 바랐다"라고 설명했다.

그를 돌아본 테러범은 상대방의 손에 산탄총이 있는 것을 보더니 자신의 총을 떨어뜨리고 차를 향해 황급히 도망쳤다고 한다.

테러범을 뒤쫓아간 아지즈는 "그가 차 안에 앉자 난 산탄총을 마치 화살처럼 던져 차창을 박살냈다"며 "그는 약간 겁을 먹더니 '전부 죽여버리겠다'며 욕을 하고는 이내 차를 몰아 그 자리를 떠났다"고 전했다.

총격 테러범인 태런트는 곧이어 경찰에 체포됐다.

사원으로 돌아온 아지즈는 모두가 겁에 질려 숨을 곳을 찾는 장면을 보고 "형제여, 이제 안전하니 일어나라. 그는 방금 도망쳤다"라고 외쳤다. 그제서야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 사원의 임시 이맘(종교지도자) 라테프 알라비는 아지즈가 아니었더라면 사망자가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신의 난민인 아지즈는 소년 시절 호주로 와 25년을 살았고, 몇 년 전 뉴질랜드로 이주해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아지즈는 총을 든 테러범이 두렵지 않았으며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면서, 알라신은 아직 자신이 죽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 목숨을 잃더라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나임 라시드(50)는 테러범을 붙잡아 넘어뜨리려던 모습이 동영상에 포착되며 소셜미디어에서 또 다른 영웅으로 떠올랐다.

알누르 모스크에서 태런트가 총격을 시작한 지 25초 후 라시드가 그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영상에 찍힌 것이다.

라시드는 태런트의 총을 빼앗으려 한 것으로 보였으나, 그가 총을 막 붙잡으려 할 때 결국 총탄에 맞았다.

그는 21살이던 아들과 함께 테러범의 총격으로 숨을 거뒀다. 그는 2010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라시드를 형제로 부르는 커쉬드 알람은 영국 BBC 방송에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몇몇 목격자들이 말하길 라시드가 테러범을 막으려 하면서 몇 사람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알람은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충격적인 일"이라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상실이기도 하다. 정말로 마치 팔다리가 잘린 듯하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 언론들은 일제히 테러범을 막아서려다 숨진 라시드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또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인 다우드 나비(71) 역시 알누르 모스크에서 자신의 몸으로 빗발치는 총알을 막아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AFP가 전했다.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