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의 전쟁 피해 온 아프간 출신 70대, 소말리아 난민 아빠의 4살 아들 희생
휠체어신세 남편 감싼 아내, 테러범과 용감히 싸운 아빠와 아들도 사망명단에
3살 아이도 실종 후 사망 확인…아내 잃은 남편 "테러범 용서했고 사랑한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이슬람사원(모스크) 총격 테러의 희생자 면면이 공개되면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전쟁터로 변한 고국을 떠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여겼던 뉴질랜드를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난민부터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던 이민자까지 잔학한 테러리스트의 총탄을 피해 가지 못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모스크에서 기도하던 어린아이들도 다수 희생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 2곳에서 벌어진 무차별 총격 테러의 사망자 나이는 3세부터 77세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고 AFP 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총 50명의 사망자 중 48명의 신원이 확인된 가운데 44명이 남성이고 4명이 여성으로 집계됐다. 세계 곳곳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번 테러로 숨진 하지 다우드 나비(71)는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한 뒤 아프가니스탄인 협회를 운영하며 자신과 같은 난민들의 정착을 돕는 데 앞장섰다.

그의 아들 오마르는 알자지라 방송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 전에 사랑을 전파하고 서로 단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셨다"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내전이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 소말리아를 탈출해 난민으로 뉴질랜드에 정착한 아단 이브라힌 디리는 5명의 자녀와 사건 당일 모스크를 찾았다. 이 중 4명의 아이는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아직 4살에 불과한 막내 압둘라히는 영영 가족의 곁을 떠났다고 한다.

아이들의 삼촌으로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압둘라흐만 하시는 뉴질랜드헤럴드에 "그는 가족에서 가장 어린아이였다"면서 "이것은 극단주의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무슬림이 극단주의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무고한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보다 더 어린 3살배기 무카드 이브라힘은 총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알누르 모스크에서 실종됐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형 압디는 "웃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며 테러범에 대해 "그저 증오심만이 끓어오른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인 사브리 다라그메흐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뉴질랜드에 사는 4살 된 조카딸이 총격 테러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면서 "아이 아빠인 와심은 5년 전 뉴질랜드로 간 뒤 그곳이 '거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가족을 지키거나 테러범에 용감히 맞서 싸웠던 안타까운 희생자도 많았다.

방글라데시 신문 '더 데일리 스타'에 따르면 1994년 이주한 방글라데시 출신 여성 후네 아라 파르빈(42)은 는 몇 년 전부터 몸이 아파 휠체어 신세를 지던 남편 파리드 우딘 아흐메드를 격주 금요일마다 모스크에 데려다줬다.

사건 당일도 남편을 데려다준 뒤 여성 예배실로 갔던 파르빈은 총성이 울리자 현장으로 뛰어가 남편을 감싸다 결국 숨졌다. 남편은 살아남았다.

이라크 출신의 아데브 사미(52)는 두 아들을 감싸다 등에 총탄을 맞았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딸 헤바(30)는 걸프뉴스에 "아빠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총격이 시작되자 도망가지 않고 테러범과 싸우는 장면이 영상에 포착됐던 파키스탄 출신 나임 라시드(50)는 아들 탈라(21)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고 AP가 전했다. 탈라는 최근 새 직장을 얻었고 곧 결혼할 계획이었다.

친척인 쿠르시드 알람은 BBC 방송에 "그는 용감한 사람"이라면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그가 총격을 멈추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몇몇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편의점을 운영하며 모친과 아내, 1살부터 5살 사이의 3자녀를 부양하다가 총탄에 희생된 주나이드 모르타라(35), 3살 딸과 갓난아기를 두고 세상을 떠난 인도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파르하즈 아흐산(30) 등 젊은 가장들의 사연도 속속 전해졌다.

총탄이 빗발치던 알누르 모스크에서 바닥에 엎드려 쿠란을 꽂아두던 책장 밑으로 몸을 숨겨 겨우 목숨을 건진 에티오피아 출신 택시기사 압둘 카디르 아바보라(48)는 AFP에 총격범이 버린 소총에서 나치 문양을 봤다면서 "뉴질랜드도 더는 안전하지 않다. 끔찍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 사이에서는 테러범과 똑같이 분노하기보다는 그를 용서하고, 증오를 극복해야 한다는 성숙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파리드 아흐메드는 총격범을 용서했느냐는 AFP 기자의 물음에 "물론이다. 용서, 관용, 사랑, 배려, 긍정이 최선"이라면서 "범인에게 '나는 사람으로서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답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아흐메드는 아내와 함께 알누르 모스크에 갔다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범행이 일어나는 바람에 아내를 영원히 떠나보냈다. 그는 AP에도 "일부 사람들은 고의로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다양성을 갖고 조화롭게 사는 것을 깨뜨리려고 한다"며 "하지만 그들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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