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0주년 나남출판 조상호 회장, '숲에 산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황무지에 삽 한 자루 들고 지성의 숲을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그동안 출판을 하면서 각 분야 스승, 고수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1979년 창립한 나남출판사가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펴낸 책은 3천500권에 달한다.

발행인 조상호(69) 회장은 17일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군사독재 정권 시대 잠시 소나기를 피하는 심경으로 출판사를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다"며 "출판의 길에서 만난 3천명 넘는 저자들이 나의 성장을 이끈 스승"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동안 펴낸 책을 자식에 빗대 설명하며 "3천500권 모두 읽은 사람이 나밖에 더 있겠느냐"며 "강압적으로 낸 게 아니라 자유의지로 낸 책이라 모두 좋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법대 시절 조 회장은 지하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수배자 신분이 되고 제적됐다. 군대에 다녀온 후 졸업은 했지만, 학생운동 전과 때문에 취업이 여의치 않았다.

언론인의 꿈을 품었던 그는 출판사를 차려 기자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저널리스트 역할을 했다.

나남출판사의 신간 '숲에 산다'는 조 회장이 출판사를 가꾼 40년간의 기록을 직접 담은 책이다.

조 회장은 "삶은 의도한 대로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고, 책도 운명이나 팔자가 있더라"며 "어느 업종, 어느 삶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남출판사는 사회과학 관련 분야 서적을 많이 펴냈다. 한때 어지간한 신문방송학과 전공 서적은 나남에서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다고 문학이 약한 것도 아니다. 김약국의 딸들'(1993년)에 이어 발간한 박경리 작가의 '토지'(2002년)는 200만권 이상 팔렸다.

'토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나남은 더욱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됐고, 많은 판매량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과학자들의 저서를 출판했다.

조 회장은 이를 '착한 자본'이라고 불렀다.

그는 "박경리 선생 작품으로 착한 자본이 생긴 건 행운"이라며 "박경리 선생 덕분에 젊은 학자나 문학가들의 책을 많이 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남출판사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가 이 회사 사훈이다.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도 오래 살아남는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각 분야 전문화가 이뤄진 상황에서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1년에 500권씩 팔리는 책이 1천종이면 1년에 50만권 팔리는 것"이라며 "예전처럼 밀리언셀러가 나오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포천시 신북면에 20만평 규모의 나남수목원을 조성하고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꾼다. 출판사를 열면서 꿈꿨던 지성의 숲에 더해 생명의 숲까지 일구는 셈이다.

그는 "출판이라는 본업을 지키고 세속권력의 유혹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며 "수목원은 나 자신을 지키며 숨 쉴 수 있는 출구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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