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소외노인 대상 '길고양이 관리사업'·중년여성에 인기 '펫시터'

(서울=연합뉴스) 황예림 인턴기자 = "고양이가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일이에요. 이렇게 나이 먹고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해요."

볕이 쨍하게 내리쬐던 지난 17일 오후 1시, 염원자(72)씨가 야외로 출근했다. 햇빛을 가리려고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염씨는 서울 관악구 대형 아파트 단지의 외진 곳을 구석구석 돌며 업무를 시작했다. 염씨의 발길을 따라가자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고양이 급식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급식소는 관악구청이 설치한 것이었다. 그는 허리를 구부려 급식소 안을 들여다보더니 사료와 섞여 있는 이물질을 털어내고 급식소 주변 쓰레기를 주웠다.

염씨는 "우리 동네 고양이는 때 되면 다 여기에 와서 밥을 먹는다니까요"라고 뿌듯해했다. 동네 고양이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고양이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반려동물 1천만 마리 시대에 접어들며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동물 관련 일자리가 사회활동에서 소외된 노인과 중년 여성에게 사회 참여의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 단시간 업무·자유로운 근무 환경…"노년층 일자리로 적합"

올해 초 관악구는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구청 등이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와 화장실을 관리하는 인력을 모집했다. 선발된 이들은 염원자씨를 포함한 6명. 이들은 올해 11월까지 일주일에 9시간씩 관내 길고양이를 돌본다. 매주 월·수·금요일, 하루에 3시간씩 일하고 월 27만원을 받는다.

김찬호 관악구청 반려동물팀장은 "2017년부터 구청 차원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는데 관리가 잘되지 않아 냄새가 나고 파리가 끓는다는 민원이 자주 들어왔다"면서 "주민들이 급식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청결 관리가 꼭 필요한데 장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은 아니어서 노인 일자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길고양이 관리인으로 일하는 염원자씨는 월급에 대해 "큰 수입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많이 도움이 된다"며 "기초연금이 한 달에 25만원이니 이 돈까지 하면 두 배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급여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사회 참여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다. 적적한 어르신은 일할 때 만나는 고양이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근부를 적기 위해 구청에 들르는 어르신들이 본인이 돌보는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한다"면서 "확실히 어르신의 삶에 활력소가 되는 일인 것 같다"고 전했다.

◇ 전업주부에서 전문 펫시터로… "제2의 삶 찾았다"

"나도 일을 할 수 있구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도 안 다녀봤고, 어디 가서 뭘 할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강아지를 돌보기 시작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강아지를 만나면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아요."

최근 급부상하는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분야에서는 중년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전업주부였던 김정희(57)씨는 2년 전부터 펫시터(Pet Sitter·주인이 없을 때 반려동물을 대신 돌봐주는 사람) 연계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르던 강아지 2마리가 노환으로 죽은 뒤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힘든 시간을 보내던 김씨는 펫시터로 일하며 생기 있는 삶을 되찾았다.

김씨가 하는 일은 견주가 여행을 가거나 오래 집을 비울 때 반려견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돌보는 위탁 돌봄 서비스다. 강아지의 사료와 간식을 챙겨 먹이고, 강아지가 심심하지 않게 함께 산책하러 나간다. 돌봄 기간에 반려견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돌봄 일지도 작성하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강아지의 모습을 찍어 견주에게 보내기도 한다.

김씨는 "강아지와 함께 있으면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긴다"며 펫시터 활동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고 강아지의 안 좋은 행동을 훈련을 통해 교정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한 달에 보름 정도 위탁 예약이 잡힌다는 김씨의 수입은 약 40만∼50만원.

그는 "벌이가 많진 않지만 전업주부일 때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면서 "설날이나 추석 등 연휴가 껴 있는 달에는 예약이 몰려서 더 많은 수입이 생기기도 하고, 주부가 하기에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펫시터 연계 업체 '도그메이트'에 따르면 업체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터는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40∼50대 중년 여성이다.

정나래 도그메이트 이사는 "보통 중년여성은 자녀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 강아지를 돌보는 것도 남다르다. 젊은 사람과 달리 책임감도 강하고 위기 상황에도 노련하게 대처하기 때문에 업체에서 선호하는 편"이라며 "지원자도 30∼50대 여성이 가장 많은데, 전업주부나 경력 단절 여성이 부업으로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경력 단절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관악여성인력개발센터도 최근 반려동물산업 창업교육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산업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시장·아이템 분석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김효정 관악여성인력개발센터 사업기획팀장은 "2017년부터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반려동물 돌봄 인력을 양성했다"며 "동물 돌봄 일은 나이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과 전문성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육아와 가사로 경력 단절된 중년여성이나 은퇴 후 사회 참여를 원하는 노인층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점에서 돌봄 업무는 본업보다 부업의 개념에 가깝다"면서도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본업으로 일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yellowyer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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