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우·양산 컬렉터·복원가인 미셸 오르토, 서울 플랫폼엘 전시
18∼20세기 다양한 스타일의 우·양산 한자리…마리우스 접이식 우산도 첫소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청금석으로 마감한 손잡이, 손잡이 끝 마노에 돋을새김한 여인상, 상아 지팡이, 금장식 받침대……. 아이보리빛 실크만이 살짝 바랬을 뿐, 양산은 여전히 화려함을 뽐낸다. 1820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이 양산은 어느 귀부인 마음을 사로잡고, 그의 가발과 드레스를 보호했을까.

1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 우산과 양산 수백 점이 놓였다. 프랑스 장인 미셸 오르토가 30여년간 수집한 3천 점 중 일부다.

오르토는 원래 파리의 오트 쿠튀르(맞춤복) 패션하우스에서 영화와 연극 의상·소품 제작을 담당했다. 그러다 2008년 공방 '파라솔르리 오르토'를 열고 옛 우·양산 복원과 재제작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문화부는 2013년 그에게 장인의 최고 영예인 메트르다르(Maitre d'art) 칭호를 수여했다.

우·양산 컬렉션 소개차 한국을 찾은 오르토를 이날 전시장에서 만났다. "8살 때부터 우산과 양산에 관심이 많았어요. 왜 그토록 끌렸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산 갈빗대를 덮은 천이 팽팽하게 당겨진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문득,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조상 중에 우·양산 장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죠."

오르토는 파리로 상경한 20살 때부터 본격적인 우·양산 수집에 나섰다. 벼룩시장이나 골동품 가게를 돌면서 사들였다. 이미 30살 무렵에 컬렉션 규모가 800여점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는 우·양산이 한때 10만 명에 달했던 장인 개성과 당대 유행이 함께 녹아든 공예품이었음을 보여준다.

우·양산 제작에는 금, 루비, 흑진주, 상아, 산호, 거북 등껍질, 샹티이 레이스 등 최고 재료가 사용됐다. 이를 풀어낸 스타일과 기법은 제각각이다. 화려한 꽃이 캐노피 앞뒤로 똑같이 수 놓인 우산은 놀랍게도 1810년대 신사가 사용했다.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분명한 우산도 보인다. 백조, 앵무새, 원숭이 등 다채로운 손잡이 조각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새가 없다.

귀부인 드레스나 신사 지팡이를 활용해 만든 공예품은 우·양산이 그만큼 집안의 가보였음을 일러준다. 우산 하나 잃어버려도 크게 개의치 않는 요즘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에 아름다움과 예술이 함께 깃들어 있죠. 당시는 정말 이러한 부분이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장인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우산으로 3층에 전시된 장 마리우스의 접이식 우산을 들었다. 처음 접이식 우산을 개발했다고 알려진 마리우스 원작으로 국내에 첫 소개된다.

지갑 장인인 마리우스는 비 오는 날 공방을 방문한 여성의 가발이 망가지는 것을 본 뒤 접을 수 있는 가벼운 우산을 만들어냈다.

플랫폼엘은 이번 전시 제목을 '여름이 피다'로 지었다. 우산을 펴는 행위를 꽃이 피는 것에 빗댄 것이다. 박물관 느낌의 딱딱한 전시를 피하고자 컬렉션을 유리장에 넣지 않고 그대로 선보였다. 현대미술가 권중모·김용호 작업을 함께 배치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문득 '우산에 미친 남자'가 눈·비와 햇볕을 피할 때 드는 우산이 궁금했다.

"평소 1960년에 제작된 접이식 우산을 씁니다. 여행할 때 챙기는 우산은 1980년대에 제작된 것이고요. 요즘 우산보다 20배, 30배 훨씬 단단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나름의 역사가 있는 접이식 우산 또한 언젠가 제대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시는 9월 19일까지.

ai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