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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부모님 나라 지킨 6·25 전쟁영웅 김영옥

송고시간2019-06-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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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김영옥 대령을 2019년 1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하며 제작한 포스터. [국가보훈처 제공]

국가보훈처가 김영옥 대령을 2019년 1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하며 제작한 포스터. [국가보훈처 제공]

(서울=연합뉴스) 조지 워싱턴(독립전쟁), 로버트 리·율리시스 그랜트(남북전쟁),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조지 패튼(2차대전), 더글러스 맥아더(2차대전·한국전쟁), 존 매케인(베트남전), 노먼 슈워츠코프(걸프전)….

포털 사이트 MSN닷컴이 지난 2011년 선정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인' 명단이다. 여기에 유일하게 유색인종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영옥 대령이다. 장성도 아니고 식민지 출신 이민 2세인 그가 어떻게 미국사를 빛낸 쟁쟁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김영옥은 1919년 1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부친 김순권(1886∼1941)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농업이민을 떠난 재미동포 1세대이자 공립협회와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였다. 김영옥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1년 징집돼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미군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계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됐다. 1943년 2월 임관해 일본계 이민 2세로 구성된 육군 442연대 100보병대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대대장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갈등을 잘 안다"면서 전출을 권유하자 "그들도 나도 미국 시민으로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운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프랑스 비퐁텐 마을 성당 외벽의 동판에는 2차대전 당시 김영옥 대위가 이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다 부상했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프랑스 비퐁텐 마을 성당 외벽의 동판에는 2차대전 당시 김영옥 대위가 이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다 부상했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100보병대대 부대원들은 일본이 미국의 적국이어서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는 점을 의식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 김영옥은 부하 한 명과 적진에 잠입, 독일군을 생포해 귀환했다. 연합군은 이들에게서 얻어낸 정보를 활용해 1944년 로마를 해방했다. 3개월 뒤 김영옥이 이끄는 부대는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피사에 무혈입성했다. 프랑스에서도 탄환 3발을 맞으면서도 맹활약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1946년 전역한 뒤 코인 세탁소 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그는 모국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군에 복귀했다. 한국인 유격대를 지휘하며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했으며, 미 육군 7사단 31연대 정보참모를 거쳐 31연대 1대대장을 맡았다. 미군에서 유색인종이 전투부대 대대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구만산·탑골·금병산·수안산 전투 등에서 불패의 신화를 남기며 중부전선을 60㎞ 북상시킨 주역이 됐다.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상을 입어 일본으로 후송됐다가 치료 후 복귀하기도 했다.

한미 연합작전 체험 등을 위해 미국 하와이를 방문한 육·해·공군, 해병대의 준장 진급자 40명이 2015년 1월 김영옥 대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육군 정훈공보실 제공]

한미 연합작전 체험 등을 위해 미국 하와이를 방문한 육·해·공군, 해병대의 준장 진급자 40명이 2015년 1월 김영옥 대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육군 정훈공보실 제공]

김영옥은 1952년 9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유엔군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가장 빼어난 전과를 올렸다. 미국은 은성무공훈장과 동성무공훈장, 한국은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은 "내 휘하를 거쳐 간 500만 명의 부하 가운데 최고의 군인이었다"고 회고했다. 1963∼1965년에는 한국군 군사고문을 맡아 최초의 미사일부대 창설을 주도하는 등 군 현대화 계획을 추진했다.

김영옥은 전장에서는 뛰어난 지략과 용맹을 발휘하면서도 군복을 벗으면 따뜻한 인간애를 발휘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장시화 목사가 세운 '경천애인사 아동원(敬天愛人社 兒童園)'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 후원에 나서 전쟁고아 500여 명을 돌봤다. 미군에게 보급되던 맥주와 담배 등을 구호품으로 바꿔 굶주린 아이들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19일 경천애인사 아동원이 있던 삼각지성당 앞에서는 안내판 제막식이 열렸다.

19일 제막식과 함께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선보인 경천애인사 아동원 터 안내판. 김영옥이 전쟁고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담았다. [재외동포재단 제공]

19일 제막식과 함께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선보인 경천애인사 아동원 터 안내판. 김영옥이 전쟁고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담았다. [재외동포재단 제공]

1972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에도 정계에 진출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입양아·장애인·노인·청소년·빈민·가정폭력 피해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몸 바쳤다. 2000년에는 팔순을 넘긴 고령임에도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진상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인사회 발전에도 힘써 한인건강정보센터·한미연합회·한미박물관 등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1999년 캘리포니아주의회에 위안부 결의안이 올라오자 반대하던 일본계 미국인들이 그의 설득을 받고 태도를 바꿨을 정도로 일본계 이민사회의 존경도 받았다. 2003년에는 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 다이빙 영웅 새미 리, 야구선수 박찬호 등과 함께 '미주 이민 100년의 영웅 7인'에 뽑혔다. 2005년 2월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그해 12월 별세해 이듬해 2월 하와이 호놀룰루의 국립묘지에 묻혔다.

2018년 8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에서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 표지판 기공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18년 8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에서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 표지판 기공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해 8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5번 고속도로 진입로에서는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Colonel Young Oak Kim Memorial Highway) 표지판 기공식'이 열렸다. 캘리포니아주의회 의결에 따라 재미동포의 이름을 딴 고속도로가 처음 생겨난 것이다. 미국 서부 남단 샌디에이고와 북단 시애틀을 잇는 2천200㎞의 5번 고속도로 가운데 LA카운티와 오렌지카운티 경계지점부터 91번 고속도로 교차점까지가 김영옥 기념 구간이며, 2개의 표지판이 설치됐다.

주한미군은 경기도 평택에 들어선 새 사령부의 본청 작전회의실을 지난해 6월 29일 '김영옥 회의실'로 이름 지은 데 이어 건물 가운데 하나를 '김영옥 빌딩'으로 명명해 7월 14일 현판식을 열었다. 이에 앞서 2009년 9월에는 미국 LA 한인타운 인근에 김 대령의 이름을 딴 김영옥중학교(Young Oak Kim Academy)가 문을 열었다. 2011∼2014년 우리나라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김영옥 대령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

2009년 문을 연 미국 LA의 김영옥중학교 심벌. 김영옥 대령의 얼굴과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09년 문을 연 미국 LA의 김영옥중학교 심벌. 김영옥 대령의 얼굴과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국가보훈처는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김영옥 2019년 1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고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이벤트를 펼쳤다. 미국 재향군인회 한인 829지부는 김영옥 대령 일대기를 영문만화로 제작해 재미 한글학교에 보급했는가 하면 유럽한인총연합회 등이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유럽 한인 이민 100년사'에도 김 대령의 2차대전 활약상이 수록될 예정이다.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재미동포 언론인 시절이던 2005년 전기 '아름다운 김영옥'을 출간하고 현양 사업에 앞장섰다. 그러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김영옥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그의 발자취와 업적을 재조명하고 기리는 행사가 잇따르자 그 소식이 모국으로도 전해져 뒤늦게 일부나마 알게 된 것이다. 김영옥 탄생 100주년과 6·25 발발 69주년을 맞아 그가 평생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인도주의가 널리 퍼지고, 나아가 한미·한불·한이(伊) 우호와 한일 협력에도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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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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