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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 선 '덩샤오핑의 유산' 일국양제…대만서 거부감 커져

송고시간2019-07-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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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 먼저 적용한 홍콩 갈등 확산, 대만 여론에 영향

대만 양대 대선후보 차이잉원-한궈위 '일국양제 거부' 선언

중국 샤먼 해변의 '일국양제 통일' 선전물
중국 샤먼 해변의 '일국양제 통일' 선전물

(샤먼=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난 19일 대만이 관할 중인 섬 진먼다오(金門島)를 지척에서 마주 보는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시 해변에 '일국양제 통일, 중국'이라는 내용의 대형 선전물이 서 있다. 2019.7.22 cha@yna.co.kr (끝)

(샤먼[중국 푸젠성]·타이베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김철문 통신원 = 지난 19일 찾아간 푸젠성 샤먼(廈門)시의 '일국양제(一國兩制) 해변'.

바다 건너 대만이 차지한 섬인 진먼다오(金門島)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샤먼에서 진먼다오까지의 최단 거리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많은 사람이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고 아이들은 모래를 헤집어 조개껍데기를 찾느라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느 해수욕장과 다름없는 이곳은 과거 중국 인민해방군과 대만군 사이에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인민해방군은 1958년 8월 23일부터 그해 10월 5일까지 무려 47만발의 포탄을 진먼다오에 쏟아부었고 대만군도 '본토 수복'의 전초 기지를 잃지 않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후에도 양측 간의 포격전은, 강도는 약해졌지만, 1979년 1월까지 20여년간이나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지금 이곳 해변은 대만을 향한 '평화 공세'의 선전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대만 진먼다오 마주보는 중국 샤먼 해변
대만 진먼다오 마주보는 중국 샤먼 해변

(샤먼=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난 19일 중국 관광객들이 푸젠성 샤먼(廈門)시에 있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해변'에서 바다 건너편에 있는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2019.7.22 cha@yna.co.kr (끝)

해안 도로에는 '일국양제 통일 중국'(一國兩制統一中國)이라는 붉은색 초대형 표어가 세워져 있었다.

한 글자의 높이만 10m는 됨직해 보였다. 거대한 표어는 홍콩과 마카오가 잇따라 중국에 반환된 직후인 1999년 세워졌다고 했다.

일국양제 원칙이 먼저 적용돼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으며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된 홍콩과 마카오처럼 대만 역시 '조국의 일부'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천(陳)모씨는 "대만이 옛날과는 달리 경제 발전도 어렵다고 들었다"며 "대만이 대륙(중국 본토)으로 돌아오면 많은 대만인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오랜 바람과는 달리 최근 들어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시대의 유산인 일국양제는 적용 지역에서 반감이 점차 커지면서 큰 도전에 직면한 모습이다.

일국양제가 현재 적용되고 있는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를 계기로 반중 정서가 크게 고조됐다.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처음엔 송환법 반대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현재는 중국의 지지를 받는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민주 선거제 도입 등으로 요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의 거센 저항의 배경에는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보장받아야 할 고도의 자치권이 '급속한 중국화'의 물결 속에서 침식당하고 있다는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점차 반중국 성향을 강렬하게 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21일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앞까지 가 중국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붉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려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6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중국 중앙정부 기관이 직접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은 페인트로 얼룩진 중국 국가 휘장
검은 페인트로 얼룩진 중국 국가 휘장

[AFP=연합뉴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만에서도 일국양제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진 점은 중국에 뼈아픈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연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대만에서는 중국 본토에 관한 경계심도 부쩍 커졌던 상황이었다.

재선 도전에 나선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물론 친중국 성향의 중국국민당의 대선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시 시장조차도 최근 공개적으로 일국양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일반 대만인들 사이에서도 일국양제나 중국 본토와의 통일 필요성에 관해서는 최근 들어 부정적 평가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대만민의기금회(TPOF)가 지난달 만 20세 이상 유권자 1천92명을 대상으로 한 대만독립 문제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양안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13.6%로 나왔다. 이는 1991년 관련 조사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타이베이 중산역 인근 거리의 행인들
타이베이 중산역 인근 거리의 행인들

[촬영 차대운]

대만의 한 20대 회사원은 "일국양제를 믿지 않고 수용할 생각도 없다"며 "주변의 친구들도 절반 이상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덩샤오핑 시대에 정립된 일국양제란 '한 개의 국가, 두 개의 제도'를 뜻하는 '일개국가양개제도(一個國家兩個制度)'의 줄임말로서 홍콩, 마카오, 대만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중국의 일부인 특별행정구로 편입하되 본토의 사회주의와 달리 기존의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중국에서는 일국양제 개념이 1979년 1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대만 동포에게 고함' 문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중국은 여기서 대만과 군사적 대립을 종결하고 대화에 나서자고 촉구하면서 대만의 현 상태를 존중해 합리적 통일 방안을 찾자고 제안했다.

1981년 예젠잉(葉劍英)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담화를 발표해 통일이 이뤄지면 대만은 특별행정구가 되고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듬해인 1982년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이 직접 '일개국가양개제도'라는 표현을 쓰면서 일국양제 개념 정립이 완성됐다.

이처럼 일국양제는 대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실제 적용은 각각 1997년과 1999년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받은 홍콩과 마카오에서 먼저 시작됐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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