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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들, 저울눈 속인 착취에 물질 쇠갈고리 들고 항일시위

송고시간2019-08-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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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대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 고 김계석 선생, 독립운동유공자 탈락

유족 "어머니 생각에 안타까워, 대통령도 지난해 언급·유공자 인정받아 낼것"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 고 김계석 선생 유족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 고 김계석 선생 유족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13일 오후 고 김계석 선생의 유족이 김계석 선생이 생전 인터뷰한 신문과 해녀 상패를 앞에 두고 김계석 선생의 항일 운동 공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계석 선생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부터 1932년 1월까지 제주 구좌읍과 성산읍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녀항일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연인원 1만7천여명의 해녀가 일제의 경제적 수탈과 일제 해녀조합의 횡포에 항거해 일어난 대규모 항일운동이다. 2019.8.14 koss@yna.co.kr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돌레떡 전대에 담앙 허리춤에 탁 차그네 비창 들엉 나갔주. 너희들이 총칼로 대항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대항한다고 외쳤주".

2008년 2월 96세의 나이로 작고한 김계석 선생은 숨을 거두기 석 달 전인 2007년 1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돌레떡(찐 밥을 빚어 만든 도래떡의 제주어)을 전대에 넣어 허리춤에 차고 (손에는) 비창(해산물 채취용 쇠갈고리)을 들고 거기로 나갔다"며 "너희(일본제국주의 무장경찰)가 총칼로 시위대를 진압하면 우리(해녀)는 죽음으로 대항한다고 외쳤다"고 증언했다.

김계석 선생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부터 1932년 1월까지 제주 구좌읍과 성산읍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녀항일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연인원 1만7천여명의 해녀가 일제의 경제적 수탈과 일제 해녀조합의 횡포에 항거해 일어난 대규모 항일운동이다. 여성이 주역이 된 국내 유일한 항일운동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 고 김계석 선생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 고 김계석 선생

(제주=연합뉴스) 2008년 2월 96세로 작고한 고 김계석 선생의 생전 모습. 김계석 선생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부터 1932년 1월까지 제주 구좌읍과 성산읍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녀항일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연인원 1만7천여명의 해녀가 일제의 경제적 수탈과 일제 해녀조합의 횡포에 항거해 일어난 대규모 항일운동이다. 2019.8.14 [고 김계석 선생 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koss@yna.co.kr

그의 셋째 딸인 한옥순(74)씨는 "해녀들이 우뭇가사리(천초)와 해산물을 채취해 오면 일제 해녀조합이 가격을 시가보다 턱없이 낮게 쳐주는 등 착취를 했다고 어머니가 말해줬다"며 "해녀조합이 저울눈을 속여 낮게 매기는 것을 어머니가 알아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다른 해녀들에게 알려주면서 해녀항일운동의 불씨가 지펴졌다"고 전했다.

김계석 선생은 낮에는 물질(해산물 채취작업)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면서 글을 읽혔으며 저울눈을 보는 법을 배웠다.

야학을 통해 배운 저울눈 보는 법 등을 다른 해녀들에게 가르쳐주고 일제 해녀조합이 해녀들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한 번은 일본의 착취행위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려고 제주 어업조합본부로 가려고도 했다.

또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려고 구좌읍 종달리 등지를 돌며 해녀들에게 항일운동의 정신을 높였다.

해녀들의 격렬한 시위에 일제는 제주도 전역의 무장 경찰을 총동원한 것도 모자라 목포에서 응원경찰대까지 동원했다. 그는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함경남도 원산과 일본 대마도, 도쿄 먼바다까지 가서 수년간 '원정 물질'을 하기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가 동료 해녀들과 같이 다녔던 야학을 졸업할 시기에도 원정 물질을 나간 바람에 졸업 사진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던 그는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다행히 붙잡히지 않았으나 독립운동 유공자 추서를 위한 기록이 많지 않아 현재까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 선생의 아들 한명석(65)씨는 "어머님으로부터 해녀항일운동에 관해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에 연고자가 없고 자료가 적어 어머님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며 "자식 된 도리로 명예로웠던 어머니의 생애를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 기념식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 일제 착취에 맞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다섯 분의 해녀로 시작된 해녀항일운동이 확산했다"고 말하며 김 선생에 대해 언급해 유공자 인정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 애국지사(부춘화·김옥련·부덕량) 흉상
제주해녀항일운동 애국지사(부춘화·김옥련·부덕량) 흉상

[연합뉴스 자료 사진]

해녀항일운동의 또 다른 주역인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선생 3인이 현재 독립운동 유공자로 선정돼 현재 제주해녀박물관 인근에 흉상이 세워졌다.

강창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선생 3인의 흉상 옆에 김계석, 고차동 선생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마련해 뒀다"면서 "유족들과 함께 노력해 김계석, 고차동 선생이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항일운동 재연하는 해녀들
제주 해녀항일운동 재연하는 해녀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12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 일원에서 열린 제87주년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 및 제25회 기념대회에 참가한 해녀와 참가자들이 노동력 착취와 일제의 부당함에 맞서 일본 도사(島司)에게 요구했던 요구안을 외치며 행진하는 재연 행사를 펼치고 있다. 2019.1.12 bjc@yna.co.kr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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