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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한국이름은 김진달래, 유럽의회 의원입니다"

송고시간2019-09-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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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입양인 출신 첫 유럽의회 의원…스웨덴 의회 4선 정치인

서울서 태어나 생후 9개월만에 입양…20세에 시의원 당선

"한국계 스웨덴인인 것 자랑스럽다…한국 주재 스웨덴 대사 꿈꿔"

예시카 폴피에르드 유럽의회 의원
예시카 폴피에르드 유럽의회 의원

(브뤼셀=연합뉴스) 김정은 특파원 = 예시카 폴피에르드(48) 의원이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9.17

(브뤼셀=연합뉴스) 김정은 특파원 = "안녕하세요. 유럽의회 의원 예시카 폴피에르드입니다. 한국 이름은 김진달래입니다."

최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예시카 폴피에르드(48) 의원은 환한 미소와 함께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출된 스웨덴 정치인, 그리고 한국계 입양인 출신의 첫 유럽의회 의원이다.

유럽연합(EU)의 핵심기관 중 하나인 유럽의회는 EU의 입법기관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경을 뛰어넘어 구성되는 의회다. EU의 28개 회원국에서 선출된 751명의 의원이 EU 전체의 공동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1971년 5월 서울에서 태어난 폴피에르드 의원은 생후 9개월 때 스웨덴 부부에게 입양됐다. 조용한 스웨덴 마을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친구도 많았고, 호기심과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항상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7세이던 1988년 현 소속 정당인 '보수당'에 가입했다.

불과 20세에 시의원에 당선돼 정치를 시작했고 이후 스웨덴 의회에 입성해 4선 의원을 지냈다.

의회에 있으면서 EU발 이슈와 법안들이 스웨덴을 비롯한 각 회원국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고 유럽의회 의원에 도전하기로 결심했고, 결국 그 뜻을 이뤘다.

그가 유럽의회 의원으로서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현안은 환경 문제다.

"우리가 하나의 EU로서 함께 한다면 정말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EU가 기후변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다른 국가들에 보여주는 모범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시카 폴피에르드 의원실 제공]

[예시카 폴피에르드 의원실 제공]

스웨덴인이자 유럽 시민으로서 그 사람들을 대표하는 임무에 평생을 바친 그지만, 자신을 낳아준 나라 한국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국계 스웨덴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자랑스러워졌죠.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스웨덴에서 한국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저도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일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한국에 가보고 많은 한국인과 굉장하고 풍요로운 문화를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고요."

그가 어릴 때 스웨덴에는 이민자가 많지 않았고 더구나 아시아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어릴 적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가 기억나요. 빛을 받아 생긴 내 얼굴의 그림자를 그리는 시간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높은 코를 가졌는데 내 얼굴은 좀 납작한 거에요. '내 얼굴은 좀 이상하게 생겼구나' 생각했죠. 내가 입양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스웨덴 사람인데…나는 다르구나' 생각한 거죠. 10대 때는 친구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과 같기를 바라잖아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그는 엄마가 되고 나서 자신이 더 자랑스러워졌다고 말한다. 그는 스웨덴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내 아이들에게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완벽했죠. 그들 안에는 한국의 혈통도 있는 것이고요."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자신을 떠났는지 알지 못하는 그는 한국의 친부모를 찾으려고 해봤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꽃을 닮은 그의 한국 이름은 입양기관에서 지어준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1월, 생각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가족을 만났다. 두살 터울의 친여동생을 찾은 것이다. 더구나 동생은 그가 사는 곳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동생 역시 스웨덴으로 입양됐던 것이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약간 회의적이었어요. 진짜일지 어떻게 알겠어요? 정치인은 잘 믿지를 못하죠. 그래서 동생의 페이스북을 찾아봤는데, 동생 사진을 보고 알았죠. 제 새끼손가락이 아주 짧은데, 동생도 똑같더라고요. 지금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어디가 닮았는지 찾아봅니다."

업무상 몇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한국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서 그저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뭐랄까 안심이 되는 기분이거든요."

그는 한국 요리도 배우고 있다. 김치전을 특히 좋아한다. 김치는 아직 못 담그지만 배워서 해볼 생각이다. 어머니가 만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그의 두 아들 역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다.

"저는 어릴 때 언제나 뭔가 잃어버린 부분이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제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들이 지닌 배경의 일부니까요. 또 스웨덴과 한국 모두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것이 제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지난 삶의 여정에서 개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여러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자기다움을 지키고 현재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나의 꿈은 앞으로 5년간 유럽의회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한국 주재 스웨덴 대사로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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