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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개천에서 용 나는 사다리 걷어차선 안돼"

송고시간2019-09-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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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다룬 '판결과 정의' 출간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

[창비 제공]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막아버리는 사회는 옳지 않습니다. 판사들도 그 사다리가 좁아진 느낌이 듭니다. 판사들의 생각이나 제도 자체에 사다리가 막혀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법관들에게 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주고자 했습니다."

국내 최초 여성 대법관이자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 관행을 바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잘 알려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새 책 '판결과 정의'를 펴냈다.

전작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본인이 대법관으로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돌아본 그는 이번에는 대법관 퇴임 후에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어봤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자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인 그는 17일 서울 정동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 책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거리를 두고 지나온 역사와 앞으로 펼쳐질 역사를 생각하면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판결들을 보자는 취지에서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 책에서 대법원 판결이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했는지 살펴본다. 판사들이 순수한 법리만으로 해석하고 재판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대법관들이 자신에게 허용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냉철하게 비평한다.

성희롱 교수의 해임결정취소 소송, 가습기살균제 사건, 강원랜드 사건, KIKO 사건, 삼성엑스파일 사건,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등을 통해 가부장제, 자유방임주의, 과거사 청산, 정치의 사법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김 전 대법관은 첫 장에 등장하는 가부장제와 관련해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화에 의해 구축된 위계질서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영란 "개천에서 용 나는 사다리 걷어차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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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부장제에서 우리 몸에 체화된 의식이 남혐과 여혐, 계층 간 분리 문제 등을 다 자아내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며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청산이 이렇게 안 돼 있는가, 어떻게 해야 했는가 생각하면서 대법 판결을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책의 제목은 '판결과 정의'지만 김 전 대법관은 정의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한 그는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며 "법원의 역할은 갈등을 평화롭고 모든 사람 혹은 당사자들이 최대한 수용할 수 있게 해결해줘야 하고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어떤 방법을 모르는 것이지 어떤 게 정의로운 건지 다들 알지 않나 싶다"며 "이렇게 하면 옳다, 그르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공정한 사회를 잊지 말고 판결을 해나가야 하고, 그렇게 가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사법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여다본다. 과거사 청산 문제에 사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짚는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기 사법부가 재심의 방법으로 과거사 청산을 시도했던 판결을 돌아보며 그 과정의 뚜렷한 한계를 지적하고, 과거사 '청산'이 아닌 '정리'의 수순을 밟았던 양승태 사법부 시기에 이뤄진 과거사 관련 사건 판결 과정에 적용된 논리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김 전 대법관은 "우리 사회가 정치적 민주성에 대한 논의는 많은데 일상과 개별단체에 대한 민주주의는 체계화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 삼권분립, 헌법의 근본적 원리 등을 국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법관들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생각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내가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썼다"고 말했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판사가 되는 문도 좁아지면서 상류층 비중이 커지고, 그들이 내리는 판결에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관해 김 전 대법관은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 없는 사회라는 데 동의하며 개천에서 용을 나게 하는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책에도 그는 교육제도에서 쌓아온 지식 외에 넓고 깊은 문제의식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층 이동이 비교적 쉬웠고 갈망이 컸던 사회기에 좌절감도 많이 느낄 수 있다"며 "좌절감을 완화하고 열망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를 구성해 가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열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창비. 236쪽. 1만5천원.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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