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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소왕릉서 1m 넘는 백제 묘표석 2점 발견

송고시간2019-09-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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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 앞·봉분서 각각 확인…"정밀조사에도 글자는 안 나와"

"국내 첫 사례로 무덤 수호 의미 추정…피장자 단서 없어"

익산 쌍릉 소왕릉에서 나온 묘표석 2점
익산 쌍릉 소왕릉에서 나온 묘표석 2점

사진 가운데 아래쪽에 석비형 묘표석, 오른쪽 위에 석주형 묘표석이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무왕(재위 600∼641)에 얽힌 고대 설화 '서동요' 주인공인 선화공주 무덤으로 추정된 익산 쌍릉 소왕릉에서 길이 1m가 넘는 묘표석(墓表石) 두 점이 발견됐다.

백제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두 유물은 각각 석실 앞과 봉분에서 나타났으며, 모양새가 전혀 다르다. 묘표석에 명문(銘文·금석에 새긴 글자)은 없었고, 국내에 전례가 없어 주목된다.

그러나 무왕 무덤으로 알려진 대왕릉에서 인골이 담긴 상자가 나온 것과 달리 소왕릉에서는 피장자를 추정할 만한 단서가 확인되지 않았다.

석비형 묘표석
석비형 묘표석

[문화재청 제공]

익산시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사적 제87호로 지정된 익산 쌍릉 소왕릉을 발굴해 문자를 새기지 않은 무자비(無字碑) 형태 묘표석 두 점을 찾았다고 19일 밝혔다.

소왕릉에서 발굴한 묘표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과 유사한 석비(石碑) 형태와 원뿔을 연상시키는 길쭉한 석주(石柱) 형태로 구분된다.

석비형 묘표석은 석실 입구로부터 약 1m 떨어진 지점에서 비스듬하게 선 채로 드러났다. 크기는 길이 125㎝·너비 77㎝·두께 13㎝다. 석실을 향한 앞쪽은 정교하게 다듬었으나, 뒷면은 다소 볼록하다.

석주형 묘표석은 봉토에서 누운 채로 출토됐다. 길이 110㎝·너비 56㎝ 기둥 모양이며, 몸체는 둥근 사각형이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봉토에서 발견돼 원위치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석주형 묘표석
석주형 묘표석

[문화재청 제공]

최완규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은 "국내 왕릉급 고분에서 무자비 묘표석 두 점이 발견된 첫 사례"라며 "글자가 없는 석비형 묘표석은 중국 측천무후 무덤 바깥에 있는 유물이 유명하고, 석주형 묘표석은 중국 지안(集安) 태왕릉 부근에 있는 고구려 봉토석실인 우산하(禹山下) 1천80호에서 드러난 바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어 "묘표석을 정밀히 조사했으나, 글자는 없었다"며 "무덤을 축조한 석재들과 재질이 비슷하고, 일부러 거대한 돌을 무덤 안에 넣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백제시대 묘표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묘표석을 매장한 이유에 대해서는 "석실과 봉토를 지키는 진묘(鎭墓)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를 위한 시설물 같다"며 "대왕릉은 없고 소왕릉에만 있는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백제 왕실 묘제 연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익산 쌍릉 소왕릉 전경
익산 쌍릉 소왕릉 전경

[문화재청 제공]

조사단은 소왕릉 규모와 축조 기법도 파악했다. 봉분은 지름 12m·높이 2.7m이며,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사질점토를 시루떡처럼 번갈아 쌓아 올린 판축기법을 사용했다. 이 같은 기법은 지난해 조사한 대왕릉에서도 확인됐다.

구조는 백제 사비도읍기(538∼660)의 전형적인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으로, 석실 단면은 육각형이다. 석실 길이는 340㎝·폭 128㎝·높이 176㎝로, 대왕릉과 비교하면 길이·너비·높이가 모두 약 50㎝씩 짧다.

다만 측벽 2매, 바닥석 3매, 덮개돌 2매, 후벽 1매, 고임석 1매 구조 짜임새와 석재를 치밀하게 가공한 점은 대왕릉과 동일하며, 석실 중앙에 관대(棺臺·관을 얹어놓는 넓은 받침)를 둔 점도 같다. 관대는 길이 242㎝·폭 62㎝·높이 18㎝로 대왕릉보다 작다. 석실 천장 고임석에서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든 길이 68㎝·높이 45㎝인 도굴 구덩이가 나왔다.

고분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에 이르는 연도(羨道)는 짧은 편이며, 폐쇄석은 대왕릉처럼 두 겹으로 설치했다. 남쪽으로 뻗은 무덤길인 묘도(墓道)는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드러난 묘도 길이는 약 10m다.

연구소 관계자는 "묘도는 흙을 쌓은 뒤 되파기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묘도부 끝부분에는 묘역을 표시하기 위해 다듬은 석재를 반원형으로 두른 듯하다"고 말했다.

익산 소왕릉 석실 내부
익산 소왕릉 석실 내부

[문화재청 제공]

조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관심을 끈 피장자 추정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작년 대왕릉 조사에서는 관대 위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발견됐고, 사망 시점이 620∼659년이고 60대 남성의 뼈라는 분석 결과가 알려지면서 641년 세상을 떠난 무왕 무덤이라는 견해에 힘이 실렸다.

최 소장은 "소왕릉 주인이 선화공주인지,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에 등장하는 사택적덕 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180m 거리를 두고 조성한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성된 쌍릉은 오금산 줄기가 끝나는 남서쪽 능선에 위치한다. 대왕릉은 익산에 미륵사라는 거대한 사찰을 세운 무왕, 소왕릉은 무왕 비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혔다고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전에 도굴된 바 있으며, 1917년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조사했다. 무덤 구조와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이번 학술조사는 2017년 8월 시작했다.

최 소장은 "일제강점기 조사 보고서를 보면 석실 관대나 묘표석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봉분 주변에서 발굴 마무리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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